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이 25일 돌연 사의를 표명한 정확한 이유를 청와대도 모르고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뒤늦게 경위를 파악하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올해 들어 임기가 끝나기 전에 중도 사퇴한 주요 정부 기관장이나 대통령자문 위원장은 조 위원장을 포함해 다섯 명이나 된다.
▽석연찮은 사퇴의 변=조 위원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위 안팎에선 조 위원장과 급진적 성향의 일부 위원 간의 누적된 갈등이 사퇴를 촉발한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성식 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이 6월 “학교에 복귀하겠다”며 갑작스럽게 물러났을 때도 내부 갈등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과의 갈등이 사퇴의 도화선이 됐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윤 전 위원장은 청와대 실세였던 김 실장의 집중 견제를 받고 버티기 힘들어했다”고 했다.
13일 사의를 표명한 손지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헌법기관장으로 임기를 5년이나 남겨둔 상태였다.
손 위원장은 사퇴 배경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원장을 상근 직으로 하는 선관위법의 국회 처리가 늦어진 것이 손 위원장의 ‘결단’을 재촉했다는 지적이다. ▽레임덕 현상=정부 기관장 및 위원장들의 중도 사퇴 사태는 정부 초기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정권에 대한 낮은 여론지지도와 임기 말 분위기가 중첩돼 중도 사퇴를 촉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내부는 물론 당정 간 갈등을 제어하는 국정 장악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여권에서는 고위 공직자들이 더는 청와대의 눈치를 보거나 명운(命運)을 함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가 나온다.
고위 공직을 제안 받은 사람 중 다수가 고사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병준 전 부총리의 후임 인선을 놓고 가장 유력했던 후보자는 끝까지 청와대의 입각 제의를 고사했다. 두 달째 진통을 겪고 있는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직 인선 과정에서도 일부 검찰 출신 인사가 청와대의 임용 제의를 뿌리쳤다는 후문이다.
▽인사 검증 부실=청와대가 사전 인사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건강 때문에 물러난 이상희 전 방송위원장의 경우 사전 검증 단계에서 이를 파악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전 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몰랐느냐는 질문에 “임명할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한 달 만에 건강이 나빠졌다”고 해명했다.
취임한 지 두 달도 안 된 23일 돌연 사퇴한 주동황 전 방송위원의 경우 위장전입 의혹이 제기됐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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