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美 8군 사령부

  • 입력 2006년 10월 2일 03시 02분


미 8군 사령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 미국 본토에서 탄생했다. 남양 군도 전투에 참가한 부대를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이듬해 8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6군 사령부와 함께 일본에 점령군으로 상륙했다. 북한이 6·25전쟁을 일으킨 직후 8군 사령부는 한국으로 건너와 대구중학교에 터를 잡았다. 나흘 뒤 초대 사령관인 월턴 워커 중장은 작전지휘권을 넘겨받아 전과(戰果)를 올렸다. 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용산으로 이전→54년 일본으로 복귀→55년 용산으로 재(再)이전했다.

▷용산 주둔 초창기 미 8군은 한국 정부와 군부에 막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나라를 지키게 된 사실 때문이었다. 4성 장군인 국군 1군사령관이 준장인 미군 고문단장과 지프를 함께 탈 때면 고문단장이 운전석 옆 선임자리에 앉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었다. 지프 앞에 4성 표지를 달고도 그랬다. 구호물자 요청은 유엔한국통일부흥단(UNCURK), 8군 사령부, 유엔군 사령부, 미 국무부를 거쳐 유엔본부에 전달되는 식이었다.

▷대장인 주한미군 사령관이 겸하던 8군 사령관은 1990년대에 중장 자리로 격하돼 주한미군사령관 밑에 들어갔다. 그런데도 8군 사령부는 계속 ‘용산 미8군’으로 불리며 주한미군의 상징적 존재였다. 보병 2사단을 비롯해 19지원사령부, 35방공포여단(패트리엇부대) 등을 거느리고 있지만 지휘통제권은 없다. 8군 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유엔사령부의 참모장을 맡고 있다. 8군 사령부는 유명무실해진 셈이다.

▷그럼에도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지난달 29일 8군 사령부를 2010년경 해체할 가능성을 시사하자 국내에 안보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 새로 구성될 주한 미합동군 사령부가 모든 역할을 이어받는다고 하지만 개운치 않다. 8군 사령부 해체가 주력 부대인 2사단 전면철수의 신호탄은 아닌가. 유사시 69만 명의 미 증원군은 진짜 올 것인가. ‘무늬만 자주(自主)’에 대한 불신도 쌓여 간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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