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주둔 초창기 미 8군은 한국 정부와 군부에 막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나라를 지키게 된 사실 때문이었다. 4성 장군인 국군 1군사령관이 준장인 미군 고문단장과 지프를 함께 탈 때면 고문단장이 운전석 옆 선임자리에 앉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었다. 지프 앞에 4성 표지를 달고도 그랬다. 구호물자 요청은 유엔한국통일부흥단(UNCURK), 8군 사령부, 유엔군 사령부, 미 국무부를 거쳐 유엔본부에 전달되는 식이었다.
▷대장인 주한미군 사령관이 겸하던 8군 사령관은 1990년대에 중장 자리로 격하돼 주한미군사령관 밑에 들어갔다. 그런데도 8군 사령부는 계속 ‘용산 미8군’으로 불리며 주한미군의 상징적 존재였다. 보병 2사단을 비롯해 19지원사령부, 35방공포여단(패트리엇부대) 등을 거느리고 있지만 지휘통제권은 없다. 8군 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유엔사령부의 참모장을 맡고 있다. 8군 사령부는 유명무실해진 셈이다.
▷그럼에도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지난달 29일 8군 사령부를 2010년경 해체할 가능성을 시사하자 국내에 안보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 새로 구성될 주한 미합동군 사령부가 모든 역할을 이어받는다고 하지만 개운치 않다. 8군 사령부 해체가 주력 부대인 2사단 전면철수의 신호탄은 아닌가. 유사시 69만 명의 미 증원군은 진짜 올 것인가. ‘무늬만 자주(自主)’에 대한 불신도 쌓여 간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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