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뽑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4차 예비투표를 통해 사실상 사무총장으로 뽑힌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아는 이들의 일치된 평가다.
[화보]반기문의 어린시절 소년시절 청년시절, 그리고 오늘
1970년 제3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부의 수장 자리에 오를 때까지 36년 동안 줄곧 동기 중 선두를 달리고 때로는 선배를 제치고 나가면서도 다른 이의 가슴에 맺힐 만한 언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지론은 ‘외교관은 일하는 사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놓고 살면 오해를 살 일도, 원한을 살 일도 안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김영삼 정부 후반기인 1996년 3월부터 1998년 2월까지 대통령의전수석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주변에선 “정권이 바뀌면 피해를 볼지 모르니 청와대에 너무 오래 있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많이 말렸지만 그는 “공무원이 어떻게 부여된 임무를 거부하느냐”며 지론대로 움직였다.
이런 자세는 정권이 바뀐 뒤에도 인정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도 그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주요 국제기구가 많아 요직으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주재 대사를 거쳐 2000년 1월 외교부 차관이 됐다.
하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3대 정권에서 외교 관련 요직을 맡는 것이 단지 일만 열심히 해서 된 것은 물론 아니다. ‘외교 감각 못지않게 정치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는 이래서 나온다.
특히 ‘잘나가는 외교관’들에게 거부감을 표시해 온 노무현 정권의 핵심인 386들로부터도 “우리 편은 아니지만 저쪽 편도 아니다”는 믿음을 얻을 정도의 ‘균형감각’은 ‘롱런’의 밑바탕이 됐다.
정부 내에서 반 장관을 놓고 ‘상관에게 싫은 소리는 절대 안 하는 사람’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면서도 임지에 나가 있는 대사 등 부하 직원들에게도 친필 편지를 쓰는 사려가 오늘의 반 장관에게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게 했다.
상대적으로 평탄하게 공직생활을 해 온 그에게도 두 차례의 위기가 있었다.
한 번은 2001년 갑작스럽게 차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던 것. 당시 청와대에서 후임 차관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튕겨 나가게 됐던 것이다.
반 장관은 당시 유엔 총회 의장을 겸직하던 한승수 외교부 장관의 발탁으로 유엔 총회 의장비서실장이 됐다. 외교부 실·국장을 마친 뒤 가면 적당한 자리였기 때문에 좌천을 당한 셈이었다.
반 장관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공직생활을 마감해야 하는 게 아닌가 고심하기도 했지만 묵묵히 일해 결국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됐다”는 말을 많이 한다. 유엔의 내부 사정을 잘 알게 돼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할 자양분을 키울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또 2004년 6월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한 ‘김선일 씨 피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붙잡아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청와대의 평가다. 그래서 그는 ‘관운(官運)의 사나이’로도 불린다.
하지만 관운뿐 아니라 타고난 체력과 치밀한 업무능력이 오늘의 반 장관을 있게 했다. 62세지만 올해 들어 110여 일 동안 40여 개국을 오가며 공식 업무와 유엔 사무총장 선거운동을 동시에 펼치는 강행군을 하면서 단 한 차례도 아픈 적은 물론 심한 피로도 느낀 적이 없다고 한다. 그가 하는 운동이라곤 생각을 정리하며 집무실 안을 걷는 게 전부다. 치밀한 업무 능력은 매우 꼼꼼하게 업무 처리를 하는 것으로 이어져 한때 ‘반 주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지인들에 따르면 고향인 충북 음성군과 충주시의 반 씨 집안에선 부모가 자식을 가르칠 때 “기문이처럼 돼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는 것.
반 장관은 부인 유순택 여사를 충주고에 다닐 때 처음 만났다. 당시 유 여사는 충주여고의 학생회장으로 두 사람은 충주고와 충주여고의 학생회장단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반 장관은 1962년 충주고 3학년 때 미국 정부가 주최하는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서 입상해 부상으로 미국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고, 유 여사는 미국으로 떠나는 반 장관의 환송식에서 충주여고를 대표해 꽃다발을 안겼다.
반 장관은 당시 워싱턴에서 미국 적십자사의 주선으로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그때 ‘최고의 외교관’이 될 꿈을 다졌고, 결국 외교관들이 가장 선망하는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오르게 됐다.
■ 가족-모교-고향 표정 “경사났네” 환호… 축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집과 인근 사찰에서 아들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을 기원하는 불공을 드린 어머니의 정성이 결실을 봤습니다.”
3일 오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사실상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가족과 고향 친인척, 모교 동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2월부터 충북 충주시 문화동에 있는 딸 정란(55·초등교사) 씨 집에 머물던 어머니 신현순(85)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반 장관은) 어려서부터 어느 한구석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아들이었다”며 “소원이 이뤄져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신 씨는 이날 오후 추석을 지내기 위해 반 장관이 살고 있는 서울의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향했다.
반 장관이 외교관의 꿈을 키운 모교인 충주고 재학생과 교직원, 동문들도 “개교 66년 만의 최대 경사”라며 환호했다.
한상윤(53) 교장은 “석 달 전부터 교문에 ‘제19회 졸업생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님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을 기원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응원했는데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져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2일 오후 반 장관과 통화했는데 ‘모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당선되면 이른 시일 안에 모교를 찾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3학년인 김삼열(18) 군은 “대선배님이 유엔 사무총장이 돼 자랑스럽다”며 “선배님의 영광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5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반 장관의 고향인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도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반 장관의 작은아버지인 필환(84) 씨는 “기문이가 어제(2일) ‘6일 아버님 묘소에 성묘를 오겠다’고 전화를 했다”며 “어느 때보다 기쁘고 풍성한 추석이 될 것 같다”고 기뻐했다.
충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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