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한일정상회담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핵실험과 관련한 정부의 대응 방안을 설명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대단히 위험한 불장난을 했다”는 원색적인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 북한을 향한 발언 도중 목소리 톤이 올라가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회견을 마무리하면서 “안보불감증을 걱정하는 분이 있다”며 “안보불감증도 곤란한 것이지만 지나친 안보민감증도 곤란하다”고 국민의 차분한 대응을 당부했다. 다음은 노 대통령 발언과 분석.》
○ 포용정책 변화
“이번 핵실험 실시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태로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으로) 대북정책 남북관계 전체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경고이자 상황에 대한 예측이기도 하다. 거역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국의 역할이 축소되는 쪽으로, 한국의 자율성이 많이 축소되는 쪽으로 사태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그 다음 구체적인 문제는 관계 당사국, 우리 국내 정치지도자들과 긴밀히 협의해서 하나하나 신중하게 결정해 나갈 것이다. 다만 포용정책이라는 것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효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거세게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도 이 마당에 와서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운 문제 아니겠는가. 그리고 포용정책에 효용성이 더 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지 않겠는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와 같은 정책을 포기할 일은 아니지만 상황이 그렇게 바뀌고 있다는 점은 객관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난날처럼 모든 것을 인내하고 양보하고 북한이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다 수용하고 이렇게는 해 나갈 수 없게 된 것 아닌가.”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그동안 유화적인 대북 기조와 확연히 다르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2004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해 “(자위용이라는) 북한의 핵개발 주장은 여러가지 상황에 비춰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며 북한을 이해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5월 9일 몽골을 방문해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고 한다.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조건 없이 하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대북 포용정책을 정면으로 문제삼은 배경엔 핵실험이 북한의 논리대로 자위적 차원의 조치가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안보 질서를 통째로 흔들어 놓을 메가톤급 카드라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이 발언은 그동안 △북핵 불용 △평화적 해결 △우리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라는 북핵 해결 3원칙에 따라 대화에 의한 북핵 해법을 모색해 온 정부의 북핵 정책 기조도 바꿔 놓을 가능성이 있다.
○ 국제적 제재 동참
“핵실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경고 조치로 말할 때와 이제 핵실험이 성공했다는 공식 발표가 나온 시점의 대응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6자회담의 관계 당사국과 긴밀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대응조치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고 있다. 한국 정부가 조급하게 독단적으로 구체적인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보다는 국내외적으로 충분히 의견 교환을 하고 또 잘 조율된 조치로써 대응해 나갈 것이다.
핵실험의 강행을 방지하기 위해서 핵실험이 있기 전의 남북관계와 실험 이후의 남북관계는 다를 것이라는 경고를 분명히 보냈다. 그동안 중국과 한국은 대화 쪽을 더 강조해 왔다면 일본과 미국은 제재나 압력을 강조해 온 것이 사실이다. 서로 조율해서 공조해 왔지만 기본적으로는 그와 같은 인식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한국이 제재와 압력이라는 국제사회의 강경 수단의 주장에 대해서 ‘대화만을 계속하자’고 계속 강조할 수 있는 그런 입지가 상당히 없어진 것 아닌가. 그와 같은 대화를 강조할 수 있는 입지가 현저하게 위축됐거나 상실돼 가고 있는 객관적 상황의 변화가 있다.”
노 대통령의 이 발언은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상황을 더는 피할 수 없다는 고민을 내비친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마지노선을 넘은 이상 더는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7일 의장 성명을 통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유엔헌장에 따라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조치의 핵심은 유엔헌장 제7장을 원용하는 대북 결의안을 추진하느냐다. 유엔헌장 7장이 원용되면 무기 수출과 무역거래 금지, 금융제재 이외에 군사적 제재의 가능성도 열리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동안 유엔헌장 7장을 원용하는 데 반대해 왔지만 이번엔 쉽게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대북 지원 궤도 수정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을 협의하고 있었는데 (핵실험으로) 이 협의는 내용이 현저히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것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포괄적 접근 방안을 우리 한국이 계속 주장해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등) 우리의 대북 사업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이거는 제가 포괄적으로 말씀드린 내용에 포함해서 이해해 달라.”
이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 중인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의 탄력성을 잃게 됐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포괄적 접근 방안을 통해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이번 핵실험으로 뒤통수를 맞게 된 것이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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