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9일(현지 시간) 북한의 핵실험 소식이 전해진 직후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납하면 이란 시리아 등 ‘불량국가’의 핵 개발을 막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관점을 전하는 말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 안보정책의 제1과제(테러리스트들의 대량살상무기 입수 방지)가 위협을 받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기필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폐기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미 행정부 내는 물론 다른 국가들과의 협의를 통해 새로운 전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이 새로운 전략은 ‘아주 큰 그림’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경제 및 외교 봉쇄를 시스템화해서 ‘지구전(持久戰)’을 벌이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지난주 국무부 관계자가 “핵실험을 강행하면 6자회담은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했듯이 미국은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대북 제재 움직임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최우선 과제는 유엔 결의를 채택하고 중국과 한국이 유엔 제재 결의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작업이다.
이와 더불어 각론에선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와 2000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유예 조치에 대한 ‘보상’으로 해제했던 대북 제재조치를 복원하고,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나라에 대북 금융제재 동참을 강력히 요구할 계획이다.
한반도 주변 공해(公海)상에서 북한 입출항 선박을 검문하는 방안도 일본과 논의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선 더욱 적극적으로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게 하는 한편 개성공단사업, 금강산관광의 중단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촉구할 가능성이 크다.
군사력 동원 가능성은 현 단계에선 거의 없지만 만약 북한이 핵 기술을 다른 국가나 테러단체에 확산시킬 경우 군사적 제재 수단 역시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9일 긴급회의를 열고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따른 대책을 논의했다. 안보리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이미 의장성명을 통해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하면 유엔 헌장이 규정하고 있는 책무에 맞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안보리의 제재조치는 예정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남은 문제는 제재의 강도. 무엇보다 무력 사용도 가능한 유엔 헌장 7장을 원용한 대북 제재조치를 시행할지가 관건이다.
올해 7월 북한 미사일 발사 때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유엔 헌장 제7장을 원용한 결의 채택이 추진됐으나 중국 등의 반발로 결국 유엔헌장 7장이 빠진 결의가 채택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7장을 인용한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안보리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특히 중국이 핵실험 직후 북한을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비난하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조를 보이고 있는 것도 주목되는 대목. 중국이 유엔 헌장 7장 원용에는 찬성하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이견을 제기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안보리가 일단 유엔헌장 7장 41조에 따른 비(非)군사적 강제조치를 담은 결의를 채택하면서 북한을 압박한 뒤 제재 수준을 높여가는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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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헌장 제7장 규정
유엔헌장 제7장은 평화에 대한 위협, 파괴, 침략행위에 대한 조치를 명시하고 있다. 39조부터 51조까지 13개항으로 구성된 7장은 경제 제재를 비롯한 비군사적 제재로부터 군사적 제재까지 단계적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한 것.
41조는 안전보장이사회가 비군사적 강제조치를 취하고 이를 유엔 회원국에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42조는 비군사적 강제조치 이후 공군, 해군, 육군을 활용한 무력 사용을 다루고 있다.
안보리가 7장에 근거해 제재를 한 사례는 모두 16건. ‘문제아’ 국가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7장이 원용된 대표적인 사례는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었고, 나머지는 옛 유고연방과 르완다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극단으로 치닫는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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