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체제유지” 막다른 골목 막다른 선택

  • 입력 2006년 10월 10일 01시 42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왜 국제사회의 거듭된 최후통첩까지 무시하고 핵실험을 강행했을까. 그것도 핵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한 지 불과 6일 만에….

그 해답을 찾으려면 김 위원장의 현재 처지에서 출발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종의 ‘내재적 접근법’이다.

김 위원장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체제 유지다. 체제가 안정되고 후계 구도를 무난히 정리할 수 있다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핵무기를 기어코 보유하려는 것도 체제를 유지하려는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 체제 유지를 위협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이고 다른 하나는 이 압력이 불러올 궁핍과 그에 따른 내부 위협이다. 이번 핵실험도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해 북한에 대한 압력을 줄이는 것이다. 북-미 관계가 긍정적으로 흘러간다면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도 시도해 볼 수 있고, 북일 관계가 정상화되면 남한이 그랬던 것처럼 식민지 지배 배상금 명목으로 막대한 유·무상의 원조도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일본에서 100억 달러의 원조를 받아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가 지원할 액수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정도의 액수가 북한에 흘러 들어가면 북한 경제는 활성화되고,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의도대로 경제개혁을 진행함과 동시에 큰 저항 없이 후계자를 지명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김 위원장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한과 미국은 긍정적인 대화를 나눴고, 이때만 해도 북일 정상화 수교도 곧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틀어졌다.

미국은 북한을 무시했다. 양자회담을 하자는 요구에도, 금융제재를 풀라는 요구에도 모두 귀를 틀어막은 미국은 북한이 아무 조건 없이 먼저 핵 포기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금껏 이 기조는 변하지 않고 있고 6자회담은 사망신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됐다.

이러는 사이 북한 국내 형편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다시금 1990년대 중반 같은 ‘제2의 고난의 행군’ 조짐도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유일한 흥정 카드인 핵무기를 조건 없이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미국을 믿을 수도 없다. 그러나 계속 버티자니 당장 1∼2년도 힘들다. 결국 무시로 일관하는 미국에 맞서 김 위원장은 마지막 카드로 핵실험을 강행하는 결단을 내렸다. 핵구름 앞에 미국도 더는 무시만 할 수 없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경제제재를 받아도 이제는 더 잃을 것이 없다는 판단과, 미국이 이라크와 이란, 아프가니스탄에 발목이 묶여 군사 행동을 감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략적 고려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또 한국과 한국의 ‘인계철선’으로 잡혀 있는 주한미군의 존재도 미국이 군사적 선택을 채택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제는 핵무기를 국제사회에 내놓았다. 핵보유국 자격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핵무기는 오직 흥정용이다. 원하는 것만 얻어내면 된다.

가장 큰 관건은 미국이 지금까지의 대북 정책 기조를 바꿀지 여부.

부시 행정부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이다. 그러나 북한이 강경 태도를 좀 더 높여 핵무기를 수출할 움직임까지 보이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타협이냐 군사적 해결이냐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될지 모른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이 패배하면 더욱 가능성이 있다고 김 위원장은 내심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세계 10위권 안의 강력한 군사력에 핵무기까지 손에 쥔 김 위원장은 이라크와는 달리 강력한 보복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미국이 설령 북한을 계속 무시하고 경제제재 같은 압박을 강화해도 북한은 내부 체제 유지라는 또 하나의 토끼는 잡을 수 있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화되면 될수록 이를 빌미로 계엄 상태 같은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형성하면서 반대파와 불만세력을 가차 없이 제거할 수 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가 있은 뒤 전 세계가 이를 북한의 오판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현 처지에서는 핵실험이 결코 오판이 아니다. 그는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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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김일성대 졸업·2001년 탈북)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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