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워싱턴의 기류가 절제돼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9일 오전(현지시간) 발표한 대북 성명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세계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유엔 안보리의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하면서도 "미국은 외교적 해법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례적으로 발표된 성명에서 부시 대통령은 특히 북한에 대해 일종의 레드라인을 설정하는 듯한 표현을 구사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북한은 이란과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WMD) 기술 이전을 포함해 세계 최대의 (WMD) 확산 국가들 가운데 하나"라면서 "국가나 비 국가단체에 대한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의 이전은 미국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핵무기나 핵물질을 제3자에게 이전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레드라인(금지선)'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그동안 일반적으로 인식돼온 미국의 레드라인의 개념과는 다소 맥락이 달랐다.
대부분의 관측통들은 그동안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미국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 즉 레드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근거로 볼 때 미국의 레드라인은 테러리스트들이나 이란, 시리아 등 '위험국가'에 대한 북한의 핵물질과 미사일 이전임을 추론해볼 수 있다.
따라서 핵실험 단계에 머물고 있는 북한 핵사태의 경우 적어도 부시 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북한의 다음 단계의 행동' 여하에 따라 '외교적 해법'이 적용될 수도 있는 상황으로 연결해볼 수 있다.
물론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을 응징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유엔 헌장 7장을 원용한 강력한 결의를 채택, 북한을 압박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유엔 7장을 원용하더라도 경제제재 수준에서 더 나아가 무력제재까지 가능하도록 결의안을 격상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중국은 물론 유럽의 일부 이사국들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의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지만 수십 년간 폐쇄적인 자립경제를 유지해온 북한을 상대로 제재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군사적 행동을 하려한다면 몰라도 다른 수단으로 북한을 옭죄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이 레드라인의 후퇴로까지 인식될 정도로 냉정한 대응을 보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직은 사태해결의 희망이 남아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으로 무력사용이라는 최후의 카드가 거론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점에서 미국이 '무력불사용' 약속을 지키면서 압박은 하되 외교적인 사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중국의 태도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이례적으로 북한 핵실험 사태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올해 7월 미사일 사태 당시에도 그 대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북한에 대한 경고를 했었다.
후 주석은 북한에 대해 "더 이상 사태를 악화시킬 행동을 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는 특히 부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는 9일 밤 부시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관련국들이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키거나 제어할 수없는 행동을 하는 것을 피하게 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뒤집어보면 핵실험 단계인 현 상황은 '제어할 수 있다'거나 '대화와 협상'이 적용될 수 있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이런 점에서 3일 핵실험을 선언했던 북한 외무성의 성명내용이 새삼 주목된다.
당시 성명은 '미국의 핵전쟁 위협과 제재 압력 책동'으로 핵실험을 하지 않을 수없다는 당위성을 들어 '안전성을 담보로 한 핵실험'을 예고하면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절대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를 통한 위협과 핵 이전을 철저히 불허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 스스로 핵 이전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레드라인 설정과 연결해볼 때 무시할 수없는 의미를 지닌다.
이와 함께 후 주석이 거론한 '추가적인 사태 악화' 행위 중 하나로 보이는 '핵 확산'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의지도 읽을 수 있다.
결국 상황을 종합해보면 일단 핵실험의 충격파가 가시지 않은 만큼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것과 별도로 사태가 급속도로 진정될 가능성도 상존해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다가도 상황이 급변하곤 했던 것이 10여년간 펼쳐진 북핵 사태의 특징"이라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움직임과 별개로 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도 계속돼야 하며 이 과정에서 여전히 한국과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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