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럼에서는 데라시마 지쓰로(寺島實郞) 일본종합연구소 소장이 기조발제를 했다. 또 우카이 사토시(제飼哲) 히토쓰바시(一橋)대 교수, 백영서 연세대 교수, 왕밍(王名) 칭화(淸華)대 비정부기구(NGO)연구소 소장이 각각 역사, 평화, 환경을 주제로 발제를 했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배타적인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면서 “냉전논리와 패권적인 사고방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들은 “동아시아 각국은 전체 지역 차원에서 대처해야 하는 환경오염과 조류인플루엔자(AI) 같은 현실적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며 “북한 핵 문제도 동아시아 전체가 공동 책임을 지고 지역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참석자들은 “우리가 동아시아인이 되고자 한다면 폐쇄적인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주제 발표의 요지.
▽데라시마 소장=경제적인 ‘동아시아공동체’는 이미 현실로 존재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이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25%에서 2030년 50%로 높아질 전망이다. 경제적인 상호의존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업이 사적인 자본이익만 추구하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공헌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유도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미국도 한국 일본 중국의 3국 관계가 냉각되기를 바라지 않고 있다. 일본과 다른 나라의 사이가 나쁘면 미국의 영향력도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카이 교수=일본 보수파는 냉전으로 온존된 (군국주의) 과거를 통째로 긍정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과거를 반추하지 않고 망각을 강요한다. 일본은 시기적으로 먼저 근대화를 이룩했다고 해서 남북한과 중국을 열등한 나라로 여겼다. 아시아 전체가 근대화됨으로써 이런 관계가 크게 변했는데 아직도 이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어 문제다. 국가주의는 한국 중국 일본을 불문하고 역사를 망각하게 하는 속성이 있다.
▽백 교수=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정부가 모두 지역공동체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각국 정부는 지역 이익과 국가 이익이 충돌할 때 후자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더구나 동아시아 국가 간의 국력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갈등의 여지는 크고 평화의 가능성은 작다. 동아시아 시민사회가 국가 중심의 지역전략을 규율하고 견제할 수 있는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동아시아의 지식인들과 시민사회는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연대의 경험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왕 소장=중국 정부의 각 부문 간 할거주의 경향이 강해지면서 NGO가 정부 부문에 대한 사회적 후원자 구실을 맡게 됐다. 하지만 NGO의 조직이나 역량에 문제가 있고 체제 면에서도 유효한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환경 NGO가 독자적으로 의제를 설정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 한일 중진 정치인 토론
이번 포럼엔 한일 양국의 중진 정치인들도 참석해 한일관계와 북한 핵실험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국 측에서는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원과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이, 일본 측에서는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자민당 의원,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민주당 의원이 나섰다.
가토 의원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비판해 8월 우익단체 간부로부터 방화 테러를 당한 바 있다.
또 변호사인 센고쿠 의원은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별에 맞서 싸우는 소송을 대리하는 등 재일 한국인 인권 옹호에 많은 기여를 해 왔다.
▽이 전 의원=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전에 독일이 체코의 수데텐란트와 단치히(그단스크의 독일어 이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깨끗이 포기한 사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신사 참배 문제도 마찬가지다. 독일이 아돌프 히틀러 같은 전범들을 영웅으로 받들어 제사 지낸다면 다른 유럽 국가들이 이를 묵과하겠는가.
▽윤 전 의원=일본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역대 총리들이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여러 차례 사과를 했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정치인들이 망언을 해서 상처를 다시 건드린다. 오늘 포럼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 의식에서 나왔다는 설명을 듣고 보니 놀랍고 걱정스럽다.
▽가토 의원=일본에는 역사인식과 관련해서 우려스러운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사회 전체가 복고적인 내셔널리즘(국가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미국이 태평양전쟁을 유도했다고 강변하는 ‘야스쿠니신사’식 역사관이다.
▽센고쿠 의원=과거 일본인들은 식민지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려고 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재일 한국인들이 왜 생겨났는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범죄예비군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교류가 늘어나면서 일반 시민사회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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