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사태는 미국 탓?=상당수 여권 인사들은 이번 사태를 미국의 핵 정책 실패로 규정하고 있다. 한명숙 국무총리조차 11일 국회답변에서 “미국의 제재와 일관된 금융압박이 북한 핵실험 사태의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면서 이들은 “결자해지 차원에서 북미 대화를 통해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미국 책임론을 편다. 이는 “이번 핵실험은 미국의 대북 핵 정책의 실패를 입증하는 것”이라며 북미 대화를 촉구한 DJ 논리와도 흡사하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미국에 대해 ‘대북 대화’를 촉구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다수 전문가들은 우리가 미국에 대해 대북대화에 나서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한국이 미국과 행동을 같이한다는 인식을 미국에 심어 주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대북정책을 놓고 한국 정부가 사사건건 엇가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의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겠느냐”며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권인사들 중에서 미국 탓을 하는 사람은 있어도 동맹 강화를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는 “여권은 지금 한미동맹 강화를 말하면 ‘자주’라는 기존의 정책 색깔을 포기하는 것처럼 비치고, 한나라당과의 차별화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북핵 실험이라는 국가위기사태에서도 여권이 자신의 정치적 득실에 집착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균관대 김태효 교수는 미국의 대북 압박이 북한의 핵개발을 자극했다는 논리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이 지난해 10월 이후 대북 금융제재를 한 것이 결국 핵실험을 초래했다고 하지만 북한의 핵개발은 클린턴 정부건 부시 정부건 상관없이 자체 프로그램에 따라 오랫동안 진행돼 온 것으로 봐야지 미국 태도에 따라 바뀐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 북핵은 미국 탓이요, 미국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포용론자들의 주장 자체가 역설적으로 포용정책이 북한이 핵실험 여부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변수가 아니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북한의 핵포기(폐기)를 위해 포용정책을 지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의 전제는 간단하다. 전쟁은 막아야 하는 만큼 제재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평화냐 전쟁이냐의 단순 논리”(전여옥 최고위원)라고 비판한다.
북한이 핵을 갖게 된 상황에서도 계속 포용정책에 매달리는 식이라면 북한이 국지적인 무력도발을 하더라도 대화와 포용밖에 해결의 길이 없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는 “포용정책 말고도 대북 봉쇄정책, 억제 정책, 상호주의 정책 등 여러 정책이 있을 수 있다. 포용 정책의 문제점은 북한이 핵개발을 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준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DJ 햇볕정책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자처하는 민주당은 “햇볕정책은 옳았지만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화갑 대표는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햇볕정책을) 미국 일본과 협의해서 함께 갔지만 노 대통령은 단독으로 포용정책을 밀고 가다 이제 한계에 부딪친 것 아니냐”며 “현 정부의 포용정책은 미국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추진한 데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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