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은 “PSI 문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는 기존 방침에서 바뀐 것이 없다”고 봉합하긴 했으나 언제 갈등이 재연될지 모른다.
국가 위기를 관리하고 수습해야 할 여권이 북핵 사태의 해법과 관련된 중요한 정책 방향을 놓고 국민에게 혼란만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혼선이 빚어지는 것일까.
▽당위와 현실의 의도적 착각(?)=DJ는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개발을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며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의 대북압박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당연히 현 사태를 해결할 책임도 미국에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남북화해협력 기반을 구축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업적’이 훼손되는 것을 막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DJ의 논리는 열린우리당에서도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은 옳다는 명분과 당위론에 빠져 북한 핵실험이라는 중대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의 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 간 긴장완화는 진전되지 못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사태까지 온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난해 놓고 미국에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이 비난받는 것은 유감이고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대목에선 “정부도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던 노 대통령의 인식이 ‘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 대통령도 당위론을 주장하는 DJ와 여당 인사들의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북한은 압박과 제재를 가한다고 (대화에) 나올 나라가 아니다. 유엔의 조치에는 당연히 함께해야 하지만 대화도 필요하다”며 포용정책 유지를 강조했다.
▽핵심은 정체성 지키기=열린우리당의 상당수 의원들은 “그래도 포용정책만이 해법”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 핵실험은 기본적으로 북한과 미국의 대결의 산물로서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의 책임이 아니므로 대북정책 기조는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사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노선의 차이를 보이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북정책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을 포용할 것이냐, 봉쇄할 것이냐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구별하는 중요 요소인 것이 현재의 정치 현실이다. 따라서 포용정책의 실패를 인정할 경우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존재 기반을 상실한다는 측면이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햇볕정책이 옳고 미국의 대북압박이 문제였다는 논리를 인정한다고 해도, 북한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효용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도를 찾는 게 순리이지 ‘우리는 옳고 미국이 잘못한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여권 핵분열의 단초(?)=여권 내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북한 핵실험 사태를 둘러싸고 사람에 따라 계파에 따라 시각이 제각각이다. 북핵 해법의 차이가 여권 핵분열의 씨앗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번 사태 후 가장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김근태 의장이다. 그는 노 대통령이 포용정책 재검토를 언급하자 가장 먼저 제동을 걸고 나섰고 PSI 참여 문제에도 목소리를 높이며 청와대와 정부를 견제하고 있다. 북한 핵실험 사태를 계기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 보인다. 참모진도 김 의장에게 이번 현안에 대해 확실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력히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천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잠재적 대권주자인 천정배 의원도 노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하는 듯하다. 천 의원은 “포용정책에 현 사태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참여정부의 대북 정책에 일관성이 부족해 남북 간 신뢰 구축을 가로막았다”고 비판했다.
전병헌 선병렬 의원 등은 정부와 당 지도부의 전략 부재를 지적하고 나섰다.
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전 의장은 이날 현재까지 북핵 사태에 대한 태도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