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혁신과 혁신활동

  • 입력 2006년 10월 14일 03시 03분


‘정부혁신’이 노무현 정부의 발명품은 아니다. 역대 정부도 비슷한 활동을 했다. 노 정부는 전담 공무원을 202명이나 두고 예산을 따로 책정한 게 차이라면 차이다. 올해도 220억 원의 예산 중 147억 원이 혁신능력개발비로 배정돼 숱한 워크숍과 학습동아리 활동에 지원됐다. 큰돈 쓴 효과는 뭘까. 행정자치부의 설문조사 결과 일반 국민의 90%는 ‘(혁신의) 내용을 모르겠다’고 했다. 공무원 47%는 ‘혁신은 없고 혁신활동만 늘어났다’고 했다.

▷어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말만 요란한 정부혁신’에 대해 여야의 질타가 이어졌다. 행사와 실적보고서 위주의 ‘혁신활동’에 공무원들조차 “이런 게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될까”라며 자조하는 분위기다. 이용섭 행자부 장관의 지방 강연행사를 ‘정부혁신 홍보투어’라고 명명한 작명(作名) 솜씨만 혁신된 것 같다. 민간이 희망하는 정책 안정성이나 규제완화 실적은 별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이 2004년 17위에서 2005년 19위, 2006년 24위로 계속 추락한 이유를 알 만하다.

▷청와대와 재정경제부가 민간조직인 한국증권선물거래소 감사 자리에 ‘60점짜리’ 낙하산 후보를 집요하게 강권하는 과정에서도 ‘혁신’의 본색은 드러난다. 이러고서도 정부는 실적평가와 효율을 중시하는 ‘혁신인사’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끼리끼리 나눠먹는 게 혁신인사’라는 세간의 한탄이 딱 맞다. 인사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설치했다는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실이 ‘연고(緣故) 챙기기 지휘본부’로 변질된 지 오래다.

▷증권거래소 감사 선임 과정에서 청와대로부터 ‘인사협의’를 당한 박병원 재경부 차관은 민간인인 감사추천위원장에게 “나 좀 봐 달라”면서 청와대의 의중을 그대로 전달했다고 한다. 그는 “새 후보가 100점짜리가 안 될 수도 있다”면서 “저쪽(청와대)에서도 이번에 밀리면 안 된다는 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인사 개입 논란을 보면 정부혁신 수준이 보인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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