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넘치는 송 실장=송 실장이 자신있게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 방안 수립을 총괄할 수 있게 된 힘의 원천은 노무현 대통령의 확고한 신임.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송 실장이 미국을 설득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구체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 대한 신뢰를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20일 “핵실험 후 송 실장이 사실상 외교안보 분야의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돼 다음달 중순 사퇴할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북핵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송 실장이 자리를 옮길 경우 외교안보 라인을 전면 개편해야 하는 점이 노 대통령에게는 부담이다.
하지만 넘치는 자신감 탓에 주변에서 ‘오버’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강한 추진력을 가졌다 해 ‘커늘(colonel·대령) 송’이란 별명으로도 불리는 송 실장은 18일 한 강연에서 “국제사회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는 없다”며 “유엔에 우리 운명을 맡기면 자기 운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유지 방침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기조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를 놓고 정부 일각에선 국제사회의 반응을 민감하게 감지해야 하는 외교관이 한 발언으로 보기에는 너무 강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노 대통령의 ‘외교관(觀)’을 따라가려는 ‘코드 맞추기’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
▽하소연 하는 이 장관=통일부의 직접 대화 상대인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대화만 고집하면서 2차 핵실험을 위협하고 있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외교전의 양상에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제한됐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한미동맹 주요 현안은 물론 외교, 국방, 통일 등 외교안보 전 분야의 의사 결정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오던 막강 파워는 어느새 옛 이야기가 된 것.
올해 2월 새롭게 개편된 대통령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비서관에 서주석 전 NSC 전략기획실장, 전략비서관에 박선원 전 NSC 행정관 등 ‘친 이종석’ 인사가 기용되면서 안보정책실이 이 장관의 품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지만 송 실장의 급부상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정책추진의 추동력을 상실하고 있는 포용정책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최후의 방어자 역할만 힘겹게 수행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장관의 포용정책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당국자는 “포용정책이 폐기될 경우 이 장관 역시 존재의 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에 포용정책의 수호는 스스로의 보호본능의 발동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이 장관의 하소연도 늘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말도 잘 듣지 않는 북한이 남측의 말을 들으리라고 애초부터 생각지 않았다거나, 남측이 북측에 대해 지렛대를 갖기에는 포용정책을 추진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식의 발언이 부쩍 늘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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