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과 노무현 대통령,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간의 면담 이후 청와대는 보도자료에서 “북핵 폐기를 위해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면서 조율된 대응을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문에 대한 성실한 이행을 강조하는 미국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우려하는 한국 정부의 저항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조율된 조치’ 더 어려워지나=라이스 장관의 방한을 통해 한미 양국은 북한 핵실험 이후 조치에 대한 조율된 의견을 도출하려 했지만 결과는 이견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는 평가다
한국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등에 대한 미국 측의 요구를 거부하고 기존 방침을 고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회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을 반영한 듯 라이스 장관은 20일 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라이스 장관은 중국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20일 오전 KBS와의 인터뷰에서 “동북아 국가들이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북한의 도발에 더욱 분명한 대응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이스 장관은 특히 ‘미국은 금강산 관광 사업의 중단을 바라느냐’는 질문에 대해 “북한이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 6자회담에 복귀하도록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전날 반 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각국이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고 북한 핵을 폐기할 수 있도록 협상할 지렛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것에 비해 금강산 관광 반대를 좀 더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정부 내부에서도 한미 외교장관 회담이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현안에 대한 양국의 방침을 설명하는 데 그친 회담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재와 외교적 해결을 병행한다, 북한의 상황 악화 조치에 반대한다는 등 이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을 제외하고는 의미 있는 조율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는 것.
일부에서는 “의견 충돌이 불거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정부 당국자는 “정부의 의견을 설명하고 라이스 장관의 의견도 충분히 듣는 기회였다”며 “하지만 민감한 사안들이다 보니 PSI나 금강산 관광같이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위원회에서 대북 제재 방안을 구체적으로 협의하기 시작하면 한미 간의 시각차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일의 평가=니컬러스 번스 미 국무부 차관은 19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라이스 장관의 한국 방문 성과에 대해 “잘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 및 전문가들의 반응은 미 행정부의 이런 모범답안과는 다소 달랐다.
한 외교소식통은 반 장관이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 선박을 검색할 수 있는 국내법적 장치를 강조하고 PSI 참여확대도 언급했지만 “그 정도 협력으론 충분치 않다는 게 미 행정부의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이 소식통은 “PSI에 참여하는지 여부는 PSI의 핵심인 ‘해상 저지 원칙’에 서명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한국이 5개 항 정도에 협력하고 있지만 핵심 조항을 거부하는 상황에선 협력하고 있다고 간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일 “라이스 장관이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토록 한국에 압력을 가했으나 긴장 고조를 우려하는 한국 정부의 저항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익명의 미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 관료들이 ‘우리는 3개월 안에 유엔 결의를 충실히 이행할 프로그램을 갖고 있으나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라이스 장관 방한 기간 중에는 발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한미일의 결속을 되살려 북한을 압박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한미일이 결속하고 중국과도 보조를 맞추는 작업”이라며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타협은 절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이 ‘PSI 우등생’인 데 비해 한국은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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