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초강경 대응” 말만하고 ‘동작그만’

  • 입력 2006년 10월 26일 03시 00분


군은 북한의 핵실험 강행 다음 날인 10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통해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 확보와 대내 결속 강화 등의 목적으로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그 결과 북한의 전략적 주도권이 강화될 것으로 관측했다.

당시 군은 서울 용산지역이 핵무기로 공격당할 경우를 상정한 미국의 모의실험 결과를 놓고 논의한 뒤 남북 군사 당국 간 합의사항까지 재검토하기로 하는 등의 강경 방침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 같은 회의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남북 군사 당국 간 합의사항 재검토 등의 강력한 대응 방침을 실제 대북 정책에 반영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군의 강경 대응 방침이 윤광웅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 수뇌부의 대북 유화책과 정부 내 핵실험 대응 전략 혼선으로 백지화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군의 심각한 평가=군은 당시 회의에서 미 국방부 산하의 방어위협제거청(Defense Threat Reduction Agency)이 서울 용산지역이 핵 공격을 받았을 경우를 상정한 모의실험 결과까지 논의했다.

만약 20kt(TNT 2만 t)의 핵무기 공격을 받게 되면 사망자 21만1000명을 포함해 사상자가 113만2000명에 달하고 방사능 오염지역은 폭발 후 24시간 내 서울 전역을 비롯해 경기 안양시까지 확산된다는 것.

또 군은 북한이 핵실험 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국제사회의 제재가 가해질 경우 ‘추가 도발 및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뿐만 아니라 군은 북한이 사태 추이를 관망하며 핵보유국에 상응하는 국제적 대우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전망은 최근 북한이 중국을 통해 미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하지 않는 조건으로 추가 핵실험 방침을 유보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뒤 미국 등 국제사회의 반응을 가늠하는 상황과 거의 일치한다.

국방부는 또 핵실험이 국내 안보 불안과 남남(南南) 갈등을 증대시킬 소지가 높은 것으로 예상했다.

▽군의 무른 대응=당시 군이 초강경 조치인 남북 군사 당국 간 합의사항 재검토 방침까지 논의했던 데는 이 같은 상황 판단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군은 그에 걸맞은 대응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국방 전문가들은 재검토 대상이 될 수 있는 군사 당국 간 합의사항으로 2004년 6월 2차 장성급 회담에서 합의한 내용들을 주로 꼽는다.

당시 남북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와 공고한 평화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서해상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양측 함정의 철저한 통제와 민간 선박에 대한 물리적 행위 금지, 국제상선 공통망 활용 등에 합의했다.

물론 무력 충돌 우려 때문에 이 같은 합의를 모두 무효로 돌리는 것은 현실화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핵실험을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제스처라도 보였어야 한다는 지적이 정부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포괄적으로 ‘그동안 군사 당국 간에 합의한 사항들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정도의 의사라도 북한에 전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북한 핵 능력의 실상과 위험성을 국민에게 즉각 공개했더라면 북핵 대응책을 놓고 빚어지고 있는 내부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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