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관 낙마의 주원인은 대북정책의 주무장관으로서 대북 관계에서 반드시 사수해야 할 ‘북핵 불용의 원칙’을 지켜내지 못한 과실이다.
핵무장을 체제 유지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굳게 믿고 있는 북한의 태도로 볼 때 애초부터 북핵 불용은 이 장관의 의지로는 지켜낼 수 없는 목표였으며 그의 운명은 북한이 틀어쥐고 있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북한 핵실험 강행을 막지 못한 것은 어차피 자신의 역량 밖의 불가항력적 일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핵실험을 막지 못한 것은 굉장히 유감이고 회한이 든다. 비가 안 오면 마치 왕의 책임인 것처럼 하는 국민정서가 있다”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서는 이 장관의 유임설이 나도는 가운데 사퇴한 데에는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북한에 대한 무력감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장관은 “(외교안보라인이) 다 바뀌고 저 하나 남으면 공세 타깃은 저일 텐데 정쟁이 지속적으로 가중되지 않겠나.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많은 부담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통일부 장관의 운명이 북한에 좌지우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홍순영 전 장관은 2001년 11월 금강산에서 열린 6차 장관급회담에서 9·11테러와 관련해 비상경계태세를 취한 남측을 비난하는 북측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회담 결렬을 선언했다가 두 달 뒤에 경질됐다. 취임 4개월 만의 일.
2004년 7월 취임했던 정동영 전 장관도 북한의 ‘비협조’로 이듬해 5월까지 남북관계가 전면 중단되면서 노심초사해야 했다. 결국 정 전 장관은 2005년 6월 북한에 200만 kW 직접 송전을 공약한 뒤 가까스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할 수 있었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북한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는 남북관계의 진전은 물론 통일부 장관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는 나쁜 관행을 만들어 버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의 대외홍보용 주간지 통일신보는 7월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한에서 북한 지도자의 영향력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며 “집권을 노리는 여야의 주요 정객들이 북을 방문해 장군님의 접견을 받아야만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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