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주요인물 잡아라” 의원 보좌관등 포섭

  • 입력 2006년 10월 30일 03시 01분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았던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1974년 자신의 보좌관 귄터 기욤(오른쪽)이 동독의 고정간첩으로 밝혀지면서 총리직에서 사퇴해야 했다. 기욤 보좌관은 1956년 동독에서 서독으로 위장 귀순한 뒤 서독 정계의 핵심부로 잠입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았던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1974년 자신의 보좌관 귄터 기욤(오른쪽)이 동독의 고정간첩으로 밝혀지면서 총리직에서 사퇴해야 했다. 기욤 보좌관은 1956년 동독에서 서독으로 위장 귀순한 뒤 서독 정계의 핵심부로 잠입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과거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도 보좌관이 간첩으로 밝혀져 사임하지 않았나.”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북한 공작원 접촉 사건이 터진 직후 공안당국 관계자는 이 사건의 실체에 반신반의하는 세간의 분위기를 전하자 이렇게 얘기했다.

최근 공안당국 관계자들 사이에선 1974년 서독을 떠들썩하게 한 ‘귄터 기욤 사건’이 종종 언급된다. 그만큼 이번 사건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브란트 당시 총리의 보좌관 귄터 기욤이 동독의 고정간첩으로 밝혀지면서 브란트 총리가 집권 5년 만에 사퇴한 사건이다.

기욤은 1956년 동독에서 위장 귀순한 뒤 서독에서 장기간 잠복했다가 세간의 관심이 멀어지자 활동을 재개해 총리 보좌관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 권력 핵심에 침투한 고정간첩 한 명이 정권의 존립을 뒤흔든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이달 초 베를린자유대 부설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 독재 체제 연구협회’는 독일 통일 16주년(3일)을 맞아 ‘서독에서의 동독 간첩 활동의 실태와 서독 정부의 대응 조치’란 보고서를 냈다.

옛 동독 첩보기관인 ‘슈타지(국가보위부)’의 활동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 슈타지는 정규 직원 9만4300명에 비공식 정보원이 17만4200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통일 전까지 40여 년 동안 3만여 명의 슈타지 비밀요원이 서독 내에서 고정간첩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이 보고서에는 귄터 기욤 사건 외에도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유형의 간첩과 이들의 활동 내용이 소개돼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슈타지는 연방 의원이나 각료 등 고위 인사들이 포섭 대상 1순위였지만 미래의 ‘주요 인물’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의원 보좌관이나 대학생 등에게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미래의 인재’를 포섭한 뒤 수년 내지 수십 년에 걸쳐 관리해 사회 곳곳에 포진시킨다는 것.

이번 ‘북한 공작원 접촉 사건’은 수사 초기 단계여서 아직 그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장민호(44·구속) 씨 등 구속된 5명이 한결같이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과거 서독의 귄터 기욤 사건과 연결하기엔 아직 이르다.

최근 공개된 슈타지 문서에 포섭 대상으로 적힌 서독의 유명 정치인 49명은 대부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중 적극적으로 슈타지와 협력한 사람은 5명에 불과했다는 것.

다만 공안당국은 지금까지 구속된 5명과 1980년대 학생운동 시절 함께 활동했던 인사들이 정관계에 다수 진출해 있다는 점을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