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상징 톈안먼(天安門)에서 창안(長安) 가와 직선으로 연결된 징퉁콰이쑤(京通快速) 로를 따라 18km를 달리다 오른쪽으로 연결된 솽차오둥(雙橋東) 로를 6km가량 더 달리면 이곳이 나온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베이징의 차오양(朝陽) 구이지만 실제로는 25km나 떨어진 베이징의 교외 퉁저우(通州) 구에 인접해 있어서 한국인은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다.
베이징의 제5순환도로 바깥에 자리 잡은 이 아지트의 정식 이름은 솽차오둥로 18호원(號院). 실제로는 둥쉬화위안 또는 둥쉬신춘(新村)으로 불린다. 2층 빌라단지인 이곳의 전체 가구는 1000여 채다. 공작원의 아지트인 3089호는 4개의 빌라단지 가운데 제3단지 89호라는 뜻이다.
미국 시민권자 장민호(44) 씨에게 포섭돼 일심회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은 차례로 이곳에서 북한 노동당 대외연락부 소속 유기순 부부장과 김정용 과장 등을 접촉한 것으로 공안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장 씨의 회사 직원인 이진강(43) 씨는 2003년 4월,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 최기영(41) 씨는 지난해 8월, 전 민노당 중앙위원 이정훈(43) 씨는 올 3월에 각각 이곳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지트는 겉으로 보기엔 다른 일반 빌라처럼 복층으로 돼 있었고 오른쪽엔 차고가 있었다. 마당은 모두 시멘트로 포장돼 있었다.
집의 왼쪽 뒤편엔 겨울에 사용하기 위한 듯 난방용 석탄이 많이 쌓여 있었고 1, 2층 방 외벽엔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주택은 바깥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창문과 채광용 유리벽은 모두 파란 비닐과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건물 오른쪽엔 안테나가 설치돼 있었다.
대문은 굳게 잠겼고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밤이 되어 캄캄해졌지만 끝내 건물 안에서 불 켜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현재 비어 있는 게 확실했다. 현관 앞엔 최근에도 사람이 산 듯 농구공과 빗자루가 놓여 있었다.
한 집 건너 옆집에 사는 60대 할머니는 “여기는 계속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살았다”며 “그러나 남한 사람인지 북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2, 3년 전 이곳에 사는 사람이 바뀌었다”며 “현재는 40대 부부와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는 모르지만 키가 160cm가 넘는 학생이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부부는 항상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외출할 때는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고 그는 말했다.
주위 부동산업자들은 “이 집은 복층 집과 차고를 합쳐 250m²가량”이라며 “매매가는 60만 위안(약 7200만 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北 4대 대남부서
통일전선부가 ‘원격조종’하는 대남전위기구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반제민족민주전선(반민전·옛 한민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등이 있다.
대외연락부는 대남 공작의 주무 부서로 공작원(간첩) 교육 및 남파, 남한 내 지하당 구축 및 해외 공작을 전담하고 있으며 부장은 김 위원장의 측근인 강관주(일명 강주일)다. ‘남조선노동당’ 사건의 주역 이선실(2000년 사망)과 1995년 충남 부여에서 체포된 무장간첩 김동식이 이 부서 소속이었다.
35호실은 대외정보조사부의 후신으로 해외정보를 수집하고 해외인사를 포섭, 매수해 남한에 투입하는 등 제3국에서의 대남사업을 주관한다. 1987년 KAL 858기 폭파사건과 1978년 영화배우 최은희 신상옥 씨 납치사건을 주도했다.
작전부는 공작원들에 대한 기본교육훈련, 침투공작원 호송 안내 복귀, 대남 테러공작 및 대남 침투 루트 개척 등을 주 임무로 하고 있으며 부장은 전 인민군 총참모장 오극렬.
통일전선부는 대남 외교·선전을 주관하는 부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의 접촉과 교류, 협력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북측 인사 대부분이 통전부 소속이다. 8월 임동옥 부장 사망 후 부장은 공석이다. 반민전은 현재 ‘구국전선’이라는 인터넷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대남 비방 방송인 ‘구국의 소리방송’(2003년 8월 중단)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 밖에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소속의 정찰국도 간첩 양성 및 남파 등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1983년 아웅산묘소 테러사건과 1996년 동해안 무장간첩 침투사건을 일으켰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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