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비공식 北-美-中접촉 어떻게 이뤄졌나

  • 입력 2006년 11월 2일 02시 56분


지난달 3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북한, 미국, 중국 3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 ‘비밀회동’은 말 그대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중국 외교부의 발표가 있기 전까지 세계 어떤 언론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북-미-중의 3자 접촉은 북한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인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이 지난달 19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지만 그때만 해도 6자회담의 전망은 불투명했다.

베이징을 방문해 탕 위원을 만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도 21일 “6자회담 복귀와 같은 북한의 제안을 받은 게 없다”(CNN 인터뷰)고 일축했다. 그러자 북한의 몸이 달기 시작했다. 그 사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를 내세운 국제사회의 제재조치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걸프 만에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합동훈련도 예고됐다. 북한이 마침내 6자회담 복귀카드를 들고 나왔다.

라이스 장관은 31일(현지 시간) CNBC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은 베이징에서 미국이 참여하는 3자회담을 열고 싶다는 뜻을 중국에 전해왔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움직이면서 중국 외교부가 바빠졌다. 중국 외교부는 25일 클라크 란트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를 통해 북한의 3자회담 개최 제안을 라이스 장관에게 전달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를 극비리에 백악관에 전했고, 마지막 순간 직접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결심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낸 라이스 장관은 27일 남태평양 피지에 머물고 있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에게 베이징행(行)을 지시했다. 피지의 태평양 도서국(島嶼國) 포럼 참석에 이어 호주 방문 일정이 잡혀있던 힐 차관보는 시드니에만 잠시 머무른 뒤 30일 캔버라 일정을 취소하고 베이징으로 향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31일 오전 9시 베이징의 서우두(首都)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의 한 빌라에서 오전 10시부터 7시간 이상 3자 비공식접촉이 시작됐다. 미국과 중국이 양자회담을 가진 뒤 3자가 오찬을 함께했다. 이어 힐 차관보와 김 부상이 따로 만나고 다시 3자가 모이는 방식으로 이날 접촉이 진행됐다. 김 부상은 6자 회담이 열리면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대한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약속하라는 뜻이었다. 이에 대해 힐 차관보는 “그런 약속을 해 줄 수는 없지만 6자회담이 열리면 실무그룹을 구성해 이 문제를 논의하자는 제의를 한 바 있다”고 상기시켰다. 북-미 양자가 서로의 입장을 분명히 이해하고 합의한 뒤 6자회담 재개 소식이 중국 신화통신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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