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전날 베이징(北京)에서 열렸던 북-미-중 3국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 직후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북한은 회담 복귀와 관련해 어떤 전제 조건도 달지 않았다”고 밝힌 것과 상충된다.
금융제재 문제에 접근하는 북-미 간의 현격한 견해차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미국은 금융제재 문제를 6자회담 틀 안에서 ‘논의해 볼 수 있다’는 태도지만 북한은 ‘해결돼야 한다’는 자세로 접근하고 있다. 힐 차관보는 전날 “6자회담에서는 미국의 금융제재 문제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다루게 되겠지만 아마도 실무그룹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관한 북-미-중 3자 간 합의사항이 명확하게 문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합의내용을 각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한 탓도 있다. 정부는 북한이 전제조건 없이 회담에 돌아오기로 한 것이 맞다는 견해다. 지난해 9월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대한 제재를 시작한 이래 “금융제재 철회 없이는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전제에서 북한이 한걸음 물러난 것은 분명하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 것은 BDA은행 동결자금 문제의 해법에 대해 나름대로 ‘전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정부 일각에서 나온다.
이와 관련해 유명환 외교통상부 1차관은 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6자회담이 재개되면 미 재무부가 그간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BDA를 돈세탁 은행으로 확정할지를 결정하고 그 결정이 나면 동결자금을 푸느냐 압수하느냐 하는 문제는 중국 정부의 판단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유 차관은 사견임을 전제로 했지만 북-미 간에 실제로 논의된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외교부 당국자는 비공식 간담회를 자청해 “유 차관의 발언은 개인적 추측일 뿐 북-미 간에 이와 관련한 어떤 합의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北, 핵 포기해야 유엔제재 해제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하면서 유엔 제재의 지속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결론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는 6자회담 복귀와는 상관없이 유지될 전망이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는 북한에 대해 핵무기 프로그램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도 이 같은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유엔 결의의 핵심 내용인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는 한 대북 제재가 당장 풀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렇지만 안보리가 결의에서 북한에 대해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한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의 6자회담 복귀는 일단 청신호로 보인다. 유엔의 한 소식통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는 유엔 결의의 일부가 이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결국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 등을 포기해야 안보리에서 제재 해제 문제가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은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할 때까지 독자적인 제재 조치를 계속 유지하는 한편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제재 조치를 적극 이행하기로 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일본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 대북 압박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정부, 쌀-비료 지원재개 시사
지난달 3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북-미-중 3자회동에서는 지난해 9·19공동성명에서 합의한 한국의 대북 200만 kW 직접 송전 문제가 다시 거론됐다.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3자회동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전력을 필요로 하고 그것도 매우 빨리 원하고 있다”며 “우리는 한국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대북 직접 송전)에 추가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힐 차관보의 이날 발언은 대북 ‘중대 제안’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결정에 기여했으며, 북한 핵실험 이후 실효성 논란을 빚었던 전력 제공이 여전히 유효한 카드임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회담 재개 합의는 북한과 미국이 하고 돈은 한국이 내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7월 5일 미사일 발사 이후 유보돼 온 쌀과 비료 지원 재개 여부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1일 “6자회담 재개 상황을 봐 가면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쌀과 비료 지원 유보는 미사일 발사에 대한 것으로 북한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와 무관하게 정부가 자율적으로 취한 조치”라고 말해 정부 재량으로 언제든 쌀과 비료 지원을 재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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