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1일 김만복 제1차장이 차기 원장으로 내정된 데 대해 “45년 만에 첫 공채 출신 원장이 탄생했다”는 ‘공식’ 반응을 보였다. 국정원 측은 “경사다.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진작될 것이다”라며 “국정원은 새롭게 출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내부 기류는 단순치 않다. 김승규 현 국정원장부터 ‘공개적으로’ 김 차장이 후임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힌 바 있기 때문에 내부 갈등이 쉽게 치유되기 힘들다.
김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정식 취임하려면 앞으로 20일은 있어야 한다.
이 기간 중 김 내정자의 원장 승진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여러 방식으로 ‘흠집 내기’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관계자는 김 내정자가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가깝다는 점을 들어 “국정원이 이종석의 손아귀에 든다는 게 말이 되느냐. 김 내정자가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인사로 국정원이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일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 내정자가 부산 출신이어서 국정원 내 부산경남 세력과 기존 호남 세력 간에 갈등이 빚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차장에는 국정원 밖에서 현 정권의 ‘실세’ 인사가 기용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돈다.
이번 인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간첩사건 수사와 맞물려 정치 공방의 소재가 될 가능성도 있다. 김 내정자가 간첩 수사에 대해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이 장관과 가깝다는 것만으로도 수사 의지를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한나라당은 “일심회 사건이 흐지부지되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박남춘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분명히 말해 간첩사건은 이번 국정원장 인사에 영향을 미친 변수가 아니다”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김만복 국정원장 내정자
1974년 국가정보원 전신인 중앙정보부에 공채로 들어간 뒤 국내와 해외, 북한 정보 분야를 두루 거쳤다. 현 정부 들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으로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호흡을 맞췄다. 김승규 현 원장에게 비토를 당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부산(60) △서울대 법대 △주미대사관 정무참사관 △NSC 사무처 정보관리실장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외교통상부, 대북정책 주도권 李→宋 급격 이동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내정된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외교안보 정책의 사령탑 역할을 해 왔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에게 쏠렸던 무게중심이 올해 중반 이후 송 실장에게 옮겨졌다”며 “외교안보 정책을 송 실장이 좌지우지한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송 내정자의 기용은 그래서 ‘역할에 걸맞은 자리로 옮기는 형식상의 변화일 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북한 핵 6자회담의 효용성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한 상황에서 송 내정자가 미국에 대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을 적극 추진한 데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향후 외교부 장관으로서 이 방안을 중심으로 북한의 핵 폐기 이행을 유도해 나갈 방침이다.
여권 일각에선 송 내정자의 기용을 계기로 대북 협상까지 외교부에서 맡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노(親盧) 직계로 분류되는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은 1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의 조직을 확대해 주도적으로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 내정자가 외교부 장관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선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최근 한 포럼에서 “인류 역사상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가 미국”이라고 발언해 미국 측의 반발을 불렀다.
야당은 물론 정부 내에서도 송 내정자가 ‘자주외교’ 코드에 집착하다 외교관으로서는 지나친 발언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중견 외교관은 “민족주의 감정에 충실한 송 실장이 간혹 특정 국가에 적대적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송민순 외교장관 내정자
추진력이 강해 ‘커늘(colonel·대령) 송’으로 불린다. 현 정부 초기 외교통상부의 주류로 분류돼 한직인 경기도 국제관계자문대사로 갔다가 다시 요직을 차지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세우는 ‘자주외교’에 지나치게 코드를 맞춘다는 평가도 있다.
△경남 진주(58) △서울대 독문과 △외무고시 9회 △외교부 북미국장 △주폴란드 대사 △외교부 차관보
■통일부, 포용정책 ‘포옹’… 햇볕 더 강해질듯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재정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북한 핵실험에 따른 대북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힌 이종석 장관보다 더 강하게 ‘햇볕정책’을 주장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북 평화번영정책에 대한 소신이 뚜렷하다.
그는 북한 핵실험 이후 미국이 북한 권부에 대한 달러 유입 창구로 지목하며 축소 내지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서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6자회담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줄다리기에 대해서는 미국이 좀더 양보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 내정자는 지난달 24일 평통 수석부의장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이 좀 더 유연한 정책을 가지고 북한과의 대화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19일 한 라디오 프로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인도적 지원을 막아본 일이 없다”며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정부가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항의 표시로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한 정부의 결정에 대한 일종의 불만 표시였다.
하지만 그는 북한에 대한 ‘열의’는 크지만 북한과 얼굴을 맞대고 직접 협상한 경험이 없다는 것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교착 국면에 처한 남북관계의 실타래를 원만히 풀어나갈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준비 안 된’ 통일부 장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또한 포용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센 현 상황에서 국제공조보다 민족공조의 논리를 앞세울 경우 국내외에서 심각한 여론의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 내정자는 이런 우려에 대해 “1972년부터 재야에서 통일운동을 한 이래 기독교계 통일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며 “비전문가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이재정 통일장관 내정자
성공회 신부 출신 정치인. 정세와 무관하게 대북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북포용정책론자.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중앙선거대책위 유세본부장으로 활약했다. 당시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된 뒤 지난해 광복절에 특별사면됐다.
△충북 진천(62) △고려대 독문과 △캐나다 토론토대 신학박사 △16대 국회의원(비례대표) △열린우리당 고문
■국방주, 현역총장 발탁… ‘별들의 대이동’ 예고
김영삼 정부 시절 김동진 합참의장 등 합참의장이 국방부 장관에 기용된 경우는 있었다. 합참의장은 현역 국군 중 서열 1위이다.
하지만 현역 참모총장이 장관으로 수직 상승한 전례는 없다. 이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새 국방부 장관에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을 전격 발탁한 것은 파격이다.
대부분 내년 3월까지가 임기인 군 수뇌부에 대한 대폭적인 조기 인사가 불가피해져 군 조직을 너무 흔드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역 대장 9명 중에는 김 내정자의 선배 및 동기가 3명 있다. 당장 김 내정자의 육사 1기 선배인 이상희 합참의장의 거취가 주목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과 관련해 권력 핵심부와 마찰을 빚어 온 일부 군 수뇌부를 교체하려는 복안이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내정자의 발탁은 노 대통령의 임기 말 군 장악과 국방 개혁의 마무리도 고려한 듯하다. 호남 배려의 의미도 있다.
당초 윤광웅 장관의 후임에는 현역 국회의원 등 민간인 또는 예비역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하지만 지난달 초 북한 핵실험 이후 군심(軍心)의 결집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하면서 현역인 김 내정자에게 힘이 실리게 됐다는 후문이다.
김 내정자는 육군 병력 감축과 군 구조 개편을 과감히 추진해 현 정부의 국방 개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비롯한 대미 현안을 원만히 풀어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한편 합참의장이 교체될 경우 후임에 김병관(육사 28기) 1군사령관, 남해일(해사 26기) 해군참모총장 등이 거론된다. 육참총장에는 권영기(갑종 222기) 2군사령관, 박흥렬(육사 28기) 육군참모차장이 꼽힌다. 황규식(육사 26기) 국방차관 후임으로는 김영룡(행정고시 15회) 국방부 혁신기획본부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김장수 국방장관 내정자
야전 주요 지휘관과 국방정책 부서를 두루 거쳤다. 1996년 강릉 잠수함 사건 때 1군사령부 작전처장으로 50여 일간 귀가하지 않고 작전을 지휘할 만큼 임무 수행에 철저하다. 국민의 정부 시절 군내 호남 인맥으로 분류됐으나 화합을 강조하는 스타일. 대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광주(58) △육사 27기 △6사단장 △합참 작전부장 △7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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