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장 씨의 메모에 P 씨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일단 자연스러워 보인다. 장 씨는 1993년 한국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으면서 P 씨 외에도 현직 기자, 공무원, 대학교수 등 대학 동창들과 인간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 메모에 적힌 6명 중 최기영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이 일심회 조직원이라는 혐의로 구속됐다는 점에서 P 씨도 장 씨의 포섭 대상으로 공안 당국이 의심하고 있다는 것.
장 씨와 P 씨는 81학번 대학 과동기로 같은 문학서클에서 활동했다. 장 씨는 1982년 10월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게 됐고 P 씨 등은 환송회를 열어 줬다고 한다. 연락이 끊어졌던 장 씨는 1993년 귀국한 뒤 간혹 P 씨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P 씨는 당시 국민회의 K 의원의 보좌관을 지낼 때였다. K 전 의원은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의 친형으로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당시 김 원장은 검찰 간부로 재직 중이었다.
이때 김 원장은 K 전 의원의 보좌진에게 “수고한다”며 몇 차례 밥을 산 적이 있고 P 씨도 김 원장과 안면을 텄다.
이후 P 씨는 A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A 전 의원은 중앙정보부에 근무한 적이 있으며 1996∼98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이런 점에서 P 씨가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장 씨는 P 씨를 장래의 포섭 대상으로 상정해 놓고 접근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P 씨는 대학 동기였던 장 씨를 역량 있는 정보기술(IT) 분야 전문 최고경영자(CEO)라고 믿었고 지난해 북한에서 석재를 채취하는 사업을 시작한 뒤에는 장 씨에게 회계나 회사 경영 등과 관련된 자문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P 씨는 “대학 과 동기라 가끔씩 만나서 집안 얘기도 하고, 정치 얘기도 하고, 나라 걱정도 하는 정도였다”고 장 씨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특별히 ‘포섭 시도’로 볼 만한 얘기는 없었고 오히려 P 씨는 “친구에게서 사업상 조언을 받은 게 문제가 된다면 어쩌겠느냐”고 했다.
장 씨가 P 씨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한 것은 체포되기 나흘 전인 지난달 22일.
장 씨는 “경찰이 이번에 불법 외국인 강사를 대대적으로 단속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는 것. P 씨는 “외국어 강사인 부인이 불법 외국인 강사 때문에 피해를 봤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한 것 같다”며 “이런 사람이 간첩이라니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장씨, 고교-대학인맥 통해 386정치인 접촉
‘일심회’ 사건의 핵심 인물인 장민호(44·구속) 씨는 주로 고교·대학 인맥을 활용해 인적 관계를 확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립 S대 국문학과 81학번인 장 씨는 미국에서 입국한 직후인 1999년 같은 대학 출신 국회의원 보좌관 및 비서관 모임에 찾아갔다. 당시 이 모임에 참석했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어떻게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장 씨가 나타나 인사를 했다”며 “이후 몇 명은 장 씨와 안면을 트고 지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장 씨는 이 모임에서 알게 된 국회의원 보좌관 S 씨를 통해 정보기술(IT) 분야의 사업에 나서기도 했다. S 씨는 89학번으로 장 씨의 대학 8년 후배.
역시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 장 씨의 대학동기 P 씨와는 다른 인물이다.
S 씨는 “당시는 대학 동문 모임이 활성화되던 시기”라며 “내가 IT 관련 석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을 때라 대학 선배로 (그 분야에) 전문가인 장 씨를 종종 만났다”고 말했다.
장 씨는 S 씨를 통해 IT 기업을 운영하던 신모 씨를 만났고, 신 씨는 사업가인 A 씨에게 장 씨를 IT 전문가로 소개했다. A 씨는 78학번으로 장 씨의 대학 3년 선배. 장 씨는 A 씨가 대주주로 있던 스카이겜TV(이후 KDC미디어, JBS 미디어로 회사 이름이 바뀜)에서 2년여간 전문경영인으로 일했다.
스카이겜TV 설립에 참여했던 B 씨는 “나와 A 씨, 장 씨, 신 씨 등 모두 4명이 각각 25%의 지분을 투자해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으나 A 씨가 장 씨가 내야 할 출자금 중 상당액을 대신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S대 동문회 성격인 ‘OO체육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체육회에는 이 대학 출신의 386 정치인이 다수 참여하고 있어 장 씨가 A 씨를 통해 이들과도 꾸준히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다.
대외활동이 많지 않았던 장 씨가 유일하게 자주 찾은 곳이 대학 동문 모임이었다는 게 장 씨 주변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다.
이에 대해 A 씨는 “장 씨의 경력이 화려해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한 것뿐”이라며 “사업상 일 말고는 개인적으로 술 한잔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A 씨는 “장 씨가 사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여야 386 인사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잘 알고 지낸다고 말해 ‘친분을 과시하는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함께 ‘일심회’ 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손정목(42·구속) 씨는 장 씨의 Y고 2년 후배이며, 이정훈(43·구속) 전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을 소개해준 것으로 알려진 B전 열린우리당 청년위원장 역시 장 씨의 고교 2년 후배다. 그러나 B씨는 “이 씨를 소개한 사실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