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개각’ 내용이 발표된 1일, 당의 진로를 놓고 홍역을 치르는 열린우리당은 수면 아래서 부글부글 끓는 양상이었다.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위기를 관리할 ‘초당적 성격’의 내각을 구성하라는 김한길 원내대표의 요청이 묵살된 것을 두고 “당을 무시한다”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전병헌 의원은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관심마저 잃었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되치기’를 당한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전날 노 대통령에게 촉구한 내용을 그대로 다시 읽은 뒤 “정기국회 중에는 나라 걱정을 우선하고 당 걱정은 나중에 결론내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건의를 묵살한 데 대한 유감을 우회적으로 표시하면서 당의 일에는 개입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거듭 전달한 셈이다.
이날 김 원내대표 등의 청와대를 향한 불만 표시는 그 톤이 높지는 않았지만, 내용 곳곳에는 노 대통령과의 결별이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분위기가 묻어났다.
이에 대해 소수이긴 하지만 당내 친노(親盧)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노 대통령의 전위(前衛)를 자임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친노 직계 모임인 의정연구센터 소속 백원우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김 원내대표의 발언은 결국 신당 창당 과정에서 노 대통령을 배제하려는 전초전 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고 대통령과 협의해야 될 문제이지 공개적으로 그렇게 발언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내 친노와 비노(非盧) 간에 파열음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 이날 오후 당내에서 “이러다간 당이 다 망하는 것 아니냐”며 “서로 진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면서 일단 확전은 피했지만 조만간 재차 삼차의 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당내의 시각이다.
여기에 야당이 이번 개각에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인사청문회는 이래저래 험로가 예상된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여당에는 원망을, 야당에는 실망을, 국민에게는 절망을 안겨준 ‘3망’ 인사”라고 비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개각때마다 여당은 ‘들러리’
“매번 개각 때마다 갈등이요 논란이니…, 언제까지 여당은 뒷받침만 해야 하나.”
11·1개각에 대해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인 정장선 의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개각을 할 때마다 당-청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푸념이었다.
올 1월 2일 개각을 앞두고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기용에 대한 열린우리당 내의 반대기류가 거세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예정됐던 당과의 협의 과정을 무시하고 유 장관의 임명을 강행했다. 이에 소장파 의원들의 집단적인 반대서명운동 움직임이 이는 등 여당 내의 반발이 확산되자 노 대통령은 열흘 뒤 당 지도부를 청와대 만찬에 초청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거꾸로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라며 ‘당-청분리’ 원칙을 선언했다.
7·3개각 때도 노 대통령은 ‘기습작전’을 폈다. 김병준 씨가 대통령정책실장을 그만둔 뒤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임명될 것이란 소문에 대해 당이 반발기류를 보이자 노 대통령은 당 지도부를 6월 29일 청와대 만찬에 초청해 “탈당하지 않겠다”며 안심시켰다. 이 자리에선 개각의 ‘개’자도 나오지 않았지만 다음 날인 6월 30일 의원들은 워크숍 도중에 개각 소식을 ‘통보’ 받았다.
이번 개각을 앞두고 당 지도부가 ‘위기관리 내각구성’을 요구하고 나서자 예고했던 개각 발표시점을 앞당겨버렸다. 당초 2일 인사추천위원회를 거쳐 개각을 단행할 예정이었지만 김 원내대표가 지난달 31일 “널리 인재를 구해 드림팀을 짜야 한다”고 하자 인사추천위를 1일로 앞당겨 열고 곧바로 개각을 발표한 것.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개각 때마다 되풀이되는 대통령의 과잉소신이 결국은 여권의 오만으로 비쳐 당과 대통령 모두의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해 왔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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