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됐던 '격돌'은 없었지만 당의 진로와 정계개편 방향을 바라보는 주요 계파의 시각차가 여지없이 분출됐다. 한 당직자는 "각자의 입장에서 처절하게 얘기한 자리였다"며 "정계개편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큰 틀에서는 '친노(親盧)'와 '비·반노(非·反盧)' 세력이 대립 축을 이루고 있지만 양쪽 세력 모두 계파에 따라 입장이 여러 갈래로 나뉘면서 '사분오열'된 여당 내부의 혼돈상을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조기 전대
조기 전당대회 소집 문제를 놓고는 친노, 반노간의 대립각이 선명했다.
친노그룹은 의총장에서 말을 아꼈지만 '장외'에서는 조기 전대의 필요성을 적극 주장했다. 초선의원 모임인 '처음처럼' 소속 최재성 의원은 "당헌·당규상 보장된 합법적 절차에 따라 전당대회를 개최하자"고 말했다. 참여정치실천연대 소속 김형주 의원은 "통합이든 재창당이든 당이 자연스럽게 가는 과정"이라며 "따라서 전대를 열어 전체 당원들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반노 성향의 통합신당파들은 조기 전대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반대했다. 탈(脫) 계파 초선모임인 '국민의 길' 간사 전병헌 의원은 "조기 전대는 당력의 낭비"라고 지적했다. 박명광 의원은 "전대는 실효성 없는 얘기이며, 방향 설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합신당론을 지지하면서 조기 전대론을 펴는 세력도 적지 않다. 열린우리당 주도로 '질서있는 통합'을 추진하려면 조기 전대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희상 의원은 "조기 전대론은 통합론자들이 주장해야 할 사항"이라며 "전대를 빨리 해 '깃발'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통합신당을 결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도·무계파 모임인 '광장' 소속 오영식 의원도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 뽑힌 지도부에 전권을 주고 통합작업을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선그룹의 김영춘 의원은 "정계개편 논의가 복잡다기한 만큼 전대가 열리면 거기서 심판을 받고 이후 지도부가 정계개편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 수임기구 구성
최대 쟁점인 '통합수임기구' 구성 문제 역시 친노 대 반노그룹 간 대립이 기본축이다.
의총에서 직접적 논쟁 거리로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통합수임기구'를 예비하는 성격의 당내 특별기구 구성 문제를 둘러싸고 양대 세력의 입장이 충돌했다.
통합신당에 적극적인 반노그룹은 당장 당내 기구를 만들어 정계개편 논의에 착수하자고 분위기를 몰아갔으나 친노그룹 쪽에선 "정기국회가 끝난 후 조기 전대를 열고 거기서 논의하자"고 반대했다.
김근태 의장은 의총에서 "당내에 정계개편 논의 기구를 구성해 질서있고 체계적으로 심도있게 논의하자는 제안이 있는데 의견을 모아보자"고 말했다.
김재윤 의원은 "이미 터진 봇물을 어떻게 막느냐"며 "정계개편 논의를 위한 특별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청래 의원 역시 "어떤 방법과 절차를 통해 정계개편을 할지를 논의하는 본질적 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조배숙 의원은 "어떻게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논의를 올스톱하느냐"며 "당 비대위가 기구를 발족시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학진 의원은"지금은 당이 조용하면 오히려 비정상이고 대란이 있는 게 오히려 정상"이라며 조속한 정계개편 논의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친노직계 그룹인 의정연 소속 이화영 의원은 "왜 그리 서두르느냐"며 "지금은 정기국회에 전념하고 나중에 전당대회를 열어 그 때 논의하면 된다"고 맞섰다.
재선그룹 쪽도 당장 특별기구를 설치하는 데는 부정적이다. 김영춘 의원은 "당장 당내 기구를 설치해서 정계개편 논의에 착수하는 데 반대한다"며 "나중에 전대에서 다양한 논의를 심판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국회의장 출신의 원로 중진인 김원기 의원은 의총 말미에 "현 시점에서 정계개편 논의기구를 만들면 자칫 성과보다 부작용이 더 많아진다"고 당내 특별기구 설치에 이의를 제기, 논란을 정리했다.
결국 의총에서는 당내 특별기구 설치 없이 비대위 중심으로 정계개편을 준비하는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노대통령 '동승론'
친노와 비·반노 세력이 극명한 대치 전선을 그리고 있는 가운데 양쪽 세력 내부에서도 입장차가 갈리는 양상이다.
청와대 참모 출신이 주축이 된 친노직계 그룹인 의정연은 대통령과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친노 직계 그룹인 참정연 소속 김형주 의원은 "노 대통령과 끝까지 뜻을 같이 하고 함께 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을 지킬 수 있는 체제가 들어오면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다"는 신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통합신당을 지지하는 비·반노 세력에서는 노 대통령과 '선긋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미 김한길 원내대표가 최근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은 정치 현안에는 개입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데 이어 핵심 당직자들이 '각개약진' 식으로 노대통령과의 관계 정리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호남 출신 주승용 의원은 "대통령이 이제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며 "탈당을 하고 국정에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합신당을 지지하는 의원들 사이에서도 대통령과 함께 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천정배 의원의 경우 신당 논의 기구를 주장하고 있지만 '대통령 배제론'에는 반대했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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