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넘어오는 노동자들을 만나면 매번 듣게 되는 얘기다. 북한의 만성적인 무역 적자와 대외 부채 때문에 이들의 수는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취재팀은 북한이 송출하는 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달 30일부터 1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문제연구소에서 15년간 북한 노동자 문제를 연구한 라리사 자브롭스카야 교수, 블라디보스토크 언론인, 현지 건설업자 등과 접촉했다.
▽3세대 북한 이주자=자브롭스카야 교수는 1991년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 북한에서 러시아로 넘어온 노동자들을 ‘3세대 이주자’라고 불렀다.
자브롭스카야 교수는 “3세대 이주자는 북한에서 살기가 더욱 힘들어 자발적으로 넘어온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주 1세대는 1950년대 북한이 6·25전쟁 이후 공업화를 추진하고 소련과 교류를 확대하면서 생겨났다. 당시 연해주로 건너온 북한 노동자들은 2만5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소련 수산물 가공공장이 인력난에 허덕일 때 북한 노동당의 명령으로 연해주로 넘어와 연해주 일대 공장에서 일했다.
2세대는 1966년 김일성 주석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당시 공산당 서기장의 블라디보스토크 회담 직후 러시아로 유입됐다. 북한과 소련은 이 회담이 끝난 뒤 1만5000∼2만 명의 북한 죄수를 동원해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강제 노역을 시키기로 합의했다.
최근 연해주로 들어오는 3세대 노동자들은 북한과 연해주가 체결한 무역경제협력의정서에 따라 매년 일정 규모로 선발된 인력. 북한보다 좋은 근로조건과 자유로운 생활 때문에 뽑을 때마다 지원자가 정원을 초과한다고 러시아 건설업자들이 전했다.
이들 노동자는 자발적으로 지원하지만 북한 당국에서 △노동당 추천 △신체검사 △결혼 여부를 철저하게 검증해 선발하고 있다.
특히 결혼한 건강한 남자는 중요한 자격 요건이 된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언론인은 “북한의 아내와 가족이 노동자의 탈출에 대비한 ‘인질’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채 대신 노동력 송출=연해주 정부는 세르게이 다르킨 연해주지사의 2003년 평양 방문 이후 북한 노동자의 인원을 해마다 늘리고 있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북한 노동자 송출 규모가 증가한 요인으로 북한-연해주 간 무역 역조와 북한의 달러화 부족을 꼽았다.
북한은 연해주와의 교역에서 1993년 193만 달러의 무역 적자를 보았으며 이후 해마다 적자 폭이 늘어났다. 지난해까지 연해주에 대한 북한의 누적 적자액은 3억76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자브롭스카야 교수는 “달러화와 에너지가 부족한 북한이 값싼 노동력으로 누적 적자와 부채를 갚고 있는 것은 1990년대 시베리아 벌목공의 집단 탈주 사태 때부터 잘 알려진 얘기”라고 말했다.
해마다 증가하는 석유 수입과 무역 역조로 볼 때 지금 북한은 러시아에서 석유를 받는 대신 대규모 노동력을 송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3중으로 착취되는 북한 노동자들=최근 북한이 연해주로 송출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구할 때나 귀국할 때 현지의 북한 간부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있다.
또 이들은 러시아 회사에 고용될 때도 러시아인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 3중으로 착취당하고 있다고 현지인들은 증언했다.
북한에서 넘어온 노동자들은 먼저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등지의 집단 합숙소에서 살면서 일자리를 구한다. 러시아가 자본주의로 전환한 뒤 북한 노동자에게 자동으로 일자리를 구해 주는 시스템은 사라졌다고 러시아 언론인들은 전했다.
이때부터 북한 노동자들은 현지 북한 간부에게 뇌물을 줘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것. 러시아 건설업체 N사 바실리 사장은 “북한 노동자들이 수입이 좋은 토·일요일 또는 야간에 작업을 구하려면 북한 안전보위부 등 현지 간부에게 월 100달러의 뇌물을 바치는 것이 ‘공식’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한 언론인은 “건설업에 종사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야간 근무를 할 경우 월평균 소득은 120∼130달러(11만4000∼12만3500원)로 러시아 노동자보다 훨씬 적다”며 러시아 내의 노동력 착취 문제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들이 공사장에서 산업재해를 당해도 보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120∼130달러에 불과한 월급마저 노동력 손실을 구실로 크게 깎이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6개월∼1년간 번 돈을 모아 귀국할 때에도 돈을 뜯긴다.
북한 노동자들은 공사장에서 번 러시아 루블화를 러시아 은행에서 달러화로 바꿔 놓았다가 노동허가서 유효 기간이 지나면 달러화를 북한 원화로 환전한다. 이 과정에서 나홋카 북한 총영사관 관리들은 터무니없는 환율로 돈을 바꿔 준다는 것이 현지 러시아인들의 증언이다.
연해주의 한 선교사는 “나홋카에서 북한 사람들이 환전하는 북한 원화 가치는 중국 암시장의 5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문제를 조사한 러시아 언론인들은 “선발 과정에서 엄선된 데다 러시아 근로환경이 북한보다 훨씬 나은 까닭에 도망가는 북한 노동자는 찾기 힘들다”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 K건설회사에서 북한 노동자에게 일을 할당하는 아나톨리 씨는 “북한 명절을 앞두고 노동자들이 앞 다투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당 간부에게 축하 편지를 보내 달라고 부탁할 때에만 머리가 조금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럴 때에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편지를 써 오라고 시키고 나는 맨 끝에다 사인만 해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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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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