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는 1일 “노무현 대통령이 송 실장을 외교장관에 내정함으로써 대북 제재와 응징을 강조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맞서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외교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번 개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가 송 실장을 장관 내정자로 임명한 인사”라며 “그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전쟁을 많이 한 나라’라고 말한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 ‘반미적 발언’을 하면서 논란의 뿌리를 제공했다”고 전했다. 서울발 기사였지만 워싱턴의 분위기가 반영된 기사 판단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송 실장의 ‘전쟁 많이 한 나라’ 발언을 두고 “미국이 치른 전쟁에는 (한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3만 명의 젊은이가 희생된 한국전쟁도 포함돼 있다”고 반박한 사실도 미국 내에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뉴욕타임스의 이번 보도는 한 전직 관리가 최근 “그는 너무 야심만만해서 미국 정부가 ‘불안하다’는 평가를 갖고 있다”고 한 지적과도 맥을 같이한다.
송 장관 내정자는 지난해 9·19 베이징(北京) 합의 이후 1년여 동안 워싱턴의 주요 관찰 대상이 됐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종석 사무차장에게 쏟아져 온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로 옮겨간 것이다.
그러나 업무성과보다 ‘문제성 발언’ 중심의 평가가 이뤄지면서 송 내정자는 워싱턴에서 후한 점수를 못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송민순의 일처리 솜씨가 돋보였다’고 점수를 후하게 매겼던 베이징 합의 당시 권력 내부의 평가와는 달리 워싱턴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한 소식통은 1일 “정확히 말하면 베이징 합의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백악관의 결심을 받아 낸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그의 성과가 과대 포장됐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지난해 10월 워싱턴의 한 비공개 세미나에서 “한국 정부가 베이징 합의 이후 너무 앞서 나가는 바람에 북한을 다루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를 겨냥한 말이었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인사의 발언 메모에는 “짜증나게 만든다(annoying)”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이 밖에 북한의 위조지폐 사건이 공론화됐을 때 외교부가 내놓은 “동맹국이 그렇게(북한이 달러를 위조했다고) 말하면, 그게 팩트(사실)가 되느냐”는 말에도 부시 행정부는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송 내정자의 발언들과 그의 향후 외교노선이 무관치 않을 것 같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편 한국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분위기에 대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가 등 한미 양국의 현안을 놓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미국의 제스처”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공식적 채널로는 송 내정자에게 우려를 제기한 일이 없다는 것이 이런 시각의 근거.
한 정부 당국자는 “논란이 된 최근 발언은 미국이 한국 측의 해명을 이해하고 사안이 끝난 것”이라며 “(차기 외교장관 내정과 관련해) 미국 측이 전혀 불만을 내비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관측되는 ‘우려’는 과거 그가 대미 협상에서 나타낸 강성 이미지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송 내정자는 2000년 한미 미사일협상 과정에서 “나는 미국에도, 청와대에도 설득되지 않을 것”이라며 완강한 입장을 고수해 한국이 개발하는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300km로 늘리며 미국에 ‘강경한’ 인상을 준 바 있다. 9·19 공동성명 채택을 위한 6자회담 과정에서도 송 내정자는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미국 측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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