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잇단 ‘여론 역주행’…人의 장막이 ‘현실’ 가리나

  • 입력 2006년 11월 3일 03시 00분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기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최근 외교안보 부처 인사에 대해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고개를 숙인 노 대통령의 표정에 고심의 흔적이 비친다. 석동률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기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최근 외교안보 부처 인사에 대해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고개를 숙인 노 대통령의 표정에 고심의 흔적이 비친다. 석동률 기자
“이 마당에 와서 포용정책의 효용성이 더 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지 않겠나.”(지난달 9일 북한의 핵실험 관련 기자회견)

“(북한이 핵실험을 했지만) 한반도에서 (남북 간) 군사적 균형이 현재로는 깨지지 않았다.”(2일 외국인 투자유치 보고회)

북한 핵실험 직후 대북 포용정책 재검토를 시사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도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핵실험 이후 노 대통령의 대북관은 차차 포용정책을 유지하는 쪽으로 선회하더니 2일에는 ‘북한 핵실험에도 군사적 균형은 깨지지 않았다’는 일반의 인식과는 동떨어진 발언을 했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이 많은 전임 대통령이 그랬듯이 임기 말 ‘인의 장막’에 갇혀 현실 인식과 판단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인의 장막’에 갇혔나=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은 이미 깨졌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38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 측이 미국의 핵우산 공약 구체화를 요구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

노 대통령의 발언이 외국인 투자유치 보고회 자리에서 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리한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한 군사전문가는 “북한 핵실험은 남북의 전력이 비대칭적임을 증명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도 2일 국민대 개교 60주년 기념 특강에서 “북한은 핵을 개발함으로써 한국과 지역 내 잠재적 위협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이 설마 남한에 핵무기를 사용하겠느냐’는 기존의 안이한 북핵관의 연장선에서 나왔다는 게 정부 내 분석이다. 이 같은 현실 인식은 대통령 주변의 의사전달 통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이 ‘인의 장막’에 갇혀 입맛에 맞게 가공된 정보만 보고받는 바람에 여론의 흐름과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노 대통령이 철저히 ‘코드형’ 외교안보라인 진영을 짠 데서도 이 같은 기류를 엿볼 수 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최근 노 대통령의 ‘코드인사’를 공개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박기춘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비서실장은 “(청와대가) 믿음과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인사를 쓰라는 국민의 공감대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기 말 증후군=김영삼 정부 시절 1996년 말 시중의 여론을 읽지 못하고 ‘노동법 날치기’를 강행한 것,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말 아들들의 비리의혹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 등이 ‘인의 장막’에 가려 민심을 읽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로 꼽힌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임기 말이 되면 대통령은 ‘임기 말이라 나를 우습게 보나’라는 생각에 민감해진다. 그런 대통령에게 시중의 비판여론을 그대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지친 대통령도 맘이 편한 사람을 불러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여론과 정치권의 요구에 역주행하는 노 대통령의 행보가 여론에 한번 밀리면 더는 국정을 장악할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임기 초에도 ‘역발상’으로 마이웨이를 고수했다”며 “원래 남의 말을 듣는 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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