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둘러싸고 법ㆍ검 '영장 갈등' 재점화

  • 입력 2006년 11월 3일 11시 48분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수사의 마무리 단계에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본사 최고위 임원들의 체포영장을 청구했던 검찰이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법원이 2003년 외환은행이 외환카드를 합병할 때 주가 조작이 있었다는 정황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검찰이 청구한 체포영장을 `전격' 기각했기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는 1일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과 마이클 톰슨 법률담당 이사의 체포영장을 청구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며 충분한 물증을 확보한 듯 자신감을 내비쳤다.

론스타가 국제 금융계를 주무르는 거대 펀드이고, 근거지가 미국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텍사스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한국 특수수사의 상징인 대검 중수부가 허술하게 체포영장을 청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론스타가 즉각 반격에 나서자 이를 일축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자신감에 따른 것이었다.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은 성명을 내고 한국 검찰의 수사가 "허위이고 반 외국자본 정서에 따라 정치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반발을 예상한 듯 "소환에 불응하면서 증거 유무를 논하지 말고 할 말이있으면 들어와서 조사받고 항변하라"고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법원은 2일 14시간여의 영장실질심사 끝에 이미 범죄인인도청구 상태인 스티븐 리 전 론스타 코리아 대표의 체포영장만 발부하고 쇼트 부회장과 톰슨 이사, 유회원 론스타 코리아 대표의 체포ㆍ구속 영장은 모두 기각했다.

검찰은 8개월 가까이 추적한 `외로운 별(론스타)' 아래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따라서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이라는 몸통 수사는 법원과 검찰의 해묵은 `영장 갈등' 속에 고비를 맞은 셈이다.

◇법원 "외환카드 주가조작 정황" 인정 = 최근 검찰과 영장 문제로 전면전까지 치달은 법원이 왜 다시 검찰이 자신있게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을까.

이용훈 대법원장이 영장 발부에 신중하라고 누차 강조하긴 했지만 이미 론스타 관련자들의 구속 영장만 네 번이나 기각했기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에도 설마 법원이 기각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법원의 판단은 외환카드 합병 비용을 줄이기 위한 욕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구속 수사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은 "2003년 11월 21일 감자 보도자료를 낸 것은 진지한 검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 자료에 의하면 허위사실로 보기에 충분하고 이는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죄질이나 피해 정도를 놓고 보면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며 합병으로 주가가 왜곡된다면 1차적으로 주식 시가만으로 이득액, 회피 손실액을 따지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감자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으면서도 외환카드 주가가 올라가자 합병 비용을 낮추기 위해 감자계획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위계로 볼 수 있지만,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해도 처벌에는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기소 단계에서 이득액, 회피 손실액을 정확하게 제시한다면 유죄 입증은 어렵지 않으니 원칙대로 불구속 수사를 해도 된다는 것이다.

증권거래법은 이득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을 때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이면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검찰은 영장에서 외환카드 주가조작으로 외환은행이 226억 원의 이득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검찰, "시간표 변경은 없다"=검찰은 론스타와 벌인 전투에서 일단 한걸음 후퇴했지만 시간표 수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환은행 헐값매각'이라는 본체 수사의 핵심 인물인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을 비롯해 금융 감독 당국 관계자들의 수사가 진행 중인데다, 설령 쇼트 부회장 등의 체포영장이 발부됐다고 하더라도 빠른 시일내 이들을 처벌하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검찰은 일단 예정된 시간표에 따라 이 전 행장과 이달용 전 부행장,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들, 일부 자문사 관계자 등 3~4명을 사법처리하고 론스타 주가조작 의혹은 장기전으로 돌입할 태세다.

검찰이 외환카드 주가조작을 당장 처벌할 경우 처벌 대상은 양벌규정에 따라 론스타법인이 아니라 인수주체인 외환은행 법인이 된다.

쇼트 부회장 등 체포영장 관련자들을 처벌한다면 궐석 재판도 가능하지만, 중요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병이 확보될 때까지 기소를 미루는 기소 중지 처분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검찰은 이런 절차상 문제보다는 법원 영장실질심사가 본안 재판처럼 돼버린 것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유회원 대표를 제외하고는 주가조작에 대한 소명 정도는 인정하면서도 체포영장을 구속영장처럼 판단해서 기각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4년 대검 중수부가 청구한 구속영장의 기각률은 5.9%였고, 지난해에는 9.1%였다. 올해 들어서는 8월까지 26.9%로 작년 전체와 비교하면 세배 가까이 높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역시 지난해에는 구속영장 기각률이 11.1%였지만 올해 들어서는 8월까지 21.4%로 급격하게 높아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근본적으로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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