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노무현 기념관

  • 입력 2006년 11월 4일 03시 04분


미국에선 퇴임한 대통령들이 고향에 도서관이나 기념관을 세우는 게 일반화돼 있다. 2004년 11월 아칸소 주 리틀록에 건립된 ‘빌 클린턴 도서관 겸 뮤지엄’이나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있는 카터센터도 그 예다. 이들 시설은 전직 대통령 재임 중의 통치 자료와 백악관 집무실 모형 등을 갖추고 있어 미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생은 물론이고 일반인도 즐겨 찾는 관광 명소로 인기가 높다.

▷노무현 대통령이 8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퇴임 후 자신의 기념관을 짓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노무현 기념관이 될지, 노사모 기념관이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이름이 무엇이든 그 기념관의 알맹이는 아마도 3분의 2 이상이 노사모 기록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한 정책이라는 것은 가짓수가 많고 따분한 것이어서 기록으로 남기 어렵다”고 했다는 보도다.

▷한국엔 서울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도서관 외엔 전직 대통령 기념관이 아직 없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구상이 관심을 끌지만 문제는 기념관을 채울 콘텐츠다. 경제, 외교안보, 교육 등 전방위적 실정(失政)에 많은 국민이 등을 돌린 상황이라 기념관으로 자화자찬(自畵自讚)을 해 봐야 비웃음만 사기 십상이다. 노사모 기록으로 기념관을 채운다면 ‘편 가르기 정치운동’의 잡화점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국민의 ‘절망(絶望)’을 거기다 담을 수도 없고….

▷노 대통령이 진짜로 기념관 건립을 꿈꾼다면 후세가 노 정권의 ‘실패’뿐만 아니라 ‘성공’에서도 배울 것이 있도록 우선 남은 임기라도 잘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의 속을 뒤집어 놓는 ‘엇나가기 국정’으로 일관한다면 자비(自費)로는 몰라도, 국민 세금으로 기념관 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과(過)도 많았지만 공(功)이 더 커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국민의 존경을 가장 많이 받는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조차 못 짓고 있지 않은가.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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