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이 외쳤던 구호들이 힘을 잃은 요인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줄이고 줄이면 ‘의도와 방법론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노무현 식 ‘자주’도 이미 자기부정(否定)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주 외국인 투자유치 보고회에 참석해 “북한이 앞으로 핵무기를 개발해 나간다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균형이 깨질 것인가. 한국군과 한국 국민의 역량으로 유지해 나갈 것이고, 아울러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나아가 국제사회의 역량으로 군사적 균형이 파괴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자문자답했다.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의 역량을 남북간 군사적 균형의 전제로 꼽을 거라면 왜 그토록 유별나게 ‘자주’를 되뇌었던가. 지난달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선 ‘핵우산 제공’을 구체적으로 보장하라고 매달렸다. 그럴 것을 1년 전 협의회 때는 왜 ‘핵우산이란 표현을 삭제하자’고 했던가. 이런 단기(短氣)와 단견(短見)으로 국민을 발 뻗고 자게 하겠는가.
1년 전 非核化 장담 비웃는 평양
작년 10월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대독한 시정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도 우리의 주도적 역할과 6자회담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한반도 비핵화(非核化)를 위한 역사적인 전기를 마련했다”고 자랑했다. 불과 1년 뒤 평양 거리에는 ‘핵보유국을 일떠세운(일으켜 세운) 김정일 장군 만세!’ 구호가 나붙었다. 지난주 북한 미국 중국이 벌인 6자회담 재개 협상 때 한국은 감쪽같이 소외됐다.
노 대통령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평화’는 대한민국 역대 정부가 추구해 온 국정목표다. 북의 전쟁 도발로부터 평화를 지키기 위한 안보를 현 정부보다 소홀히 했던 정부는 없다.
문제는 북의 핵실험으로 6·25전쟁 이후 가장 위협받고 있는 평화를 어떻게 지켜 낼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다. 노 대통령은 “한반도의 위기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원론 말고 구체적 각론을 밝힌 게 없다.
6·25 이후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를 제외하곤 우리나라에 결정적인 외환(外患)이 없었던 것은 북의 위협을 물리칠 수 있는 방어체제가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이다.
그런데 한미동맹은 변질됐다. 노 대통령의 어제 연설과는 달리 지금 한미동맹은 크게 약화됐다. 미국 신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시킬 수 없는 것은 일본과 대만 등에 피해가 가기 때문”이라고 그제 보도했다. 래리 닉시 미 의회조사국 한반도 전문연구원이 “북한 남침 때 69만 명의 미군이 증원된다는 것은 한미간 협약이 아니라 작전계획에 불과하며 조만간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한 것도 그제다.
우리 정부는 북에 대한 지렛대가 없다. 북은 쌀 비료 등을 챙기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 같은 남북대화에 응했을 뿐, 핵문제에 대해선 미국하고만 대화하겠다는 태도를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북에 3조 원 이상을 퍼 주었지만 남북대화를 통해 북의 총 한 자루, 총알 한 발도 폐기할 수 없었다.
시정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일부에서 제기된 전쟁불사론은 참으로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의 전쟁불사론은 우리가 전쟁을 걸자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각오하고라도 북핵 문제에 강력히 대처하자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은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전쟁불사론 왜곡하는 대통령
김대중 정부와 노 정부는 햇볕으로 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미신으로 오히려 국민을 지켜 줄 방어복을 먼저 벗어던진 꼴이 됐다. 북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고, 대신 북에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해 주자는 방안은 그동안의 6자회담에서도 논의됐지만 북은 끝내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
‘평화 지키기’는 북의 무모한 핵개발 등 군사적 모험 노선과 남한정부의 비현실적 대북정책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공감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핵을 가진 북과의 공존은 결코 평화가 될 수 없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