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 문제를 둘러싼 한국 내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정치 사안으로 비화한 점을 의식해 의견이 조율될 때까지 한국 정부를 압박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버트 조지프 미 국무부 군축·비확산 담당 차관이 이날 한국 측에 PSI 참여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은 데는 ‘이미 할 말은 다했다’는 생각도 깔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방한해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했을 당시 라이스 장관을 수행했던 조지프 차관은 한국 측에 오랜 시간 한국의 PSI 참여 확대의 당위성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조지프 차관은 당시 PSI 참여 확대에 반대하는 국내 여론에 대한 얘기를 듣고도 줄기차게 자신의 논리만 개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내에선 조지프 차관에 대해 ‘벽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정부 당국자는 7일 한미 간 협의를 마친 뒤 “미국 측에 남북해운합의서의 구체적인 조항과 규정들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남북해운합의서에 따라 영해 내 정해진 항로를 오가는 북한 선박을 검색하더라도 PSI를 적용했을 때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PSI에 정식 참여한 뒤에도 영해 내 북한 선박엔 PSI가 아닌 남북해운합의서를 적용해도 이해해 주기 바란다는 의사를 사실상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정부가 PSI에 정식 참여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조지프 차관 및 니컬러스 번스 미 국무부 정무차관을 만난 뒤 “송 실장은 (두 차관에게)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가운데 창의적인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기 위해 남북해운합의서로 PSI를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한미 양국은 이날 6자회담이 재개돼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대북제재를 이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북한이 6자회담에서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을 상대로 핵군축협상을 요구하는 등 강경책을 쓰며 핵 폐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안보리 결의를 통한 대북제재 수위를 계속 높여 나가면서 북한을 6자회담에 묶어 놓겠다는 복안이다.
이는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 폐기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선행조치’를 요구하기로 한 방침과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과 일본은 6일 6자회담에서 북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시설 사찰 재개, 일부 핵시설의 해체 착수 등을 요구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美-日-濠 “北선박 해상검색 계획 보류”▼
미국 일본 호주가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저지를 위해 북한 선박을 해상에서 검색하려던 계획을 보류했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3국 정부는 6일 일본 외무성에서 고위급 협의를 하고 북한을 출입하는 선박을 상공에서 감시하면서 WMD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은 각국의 항만에서 검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협의에는 6자회담의 재개 시기 조율 등을 위해 동북아시아 순방에 나선 미국 차관급 대표단의 로버트 조지프 군축·비확산 담당 차관이 참석했다.
3국 정부는 북한이 6자회담의 복귀를 전격 선언함에 따라 북한의 강한 반발을 야기할 수 있는 해상 검색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과 러시아의 해상 검색에 대한 반발도 한몫을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과 일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한 뒤 화물 검색을 위한 구체적 공조 방안을 모색해 왔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WSJ “中, 대북 내정 불간섭 정책 변화”▼
지난달 북한 핵실험 이후 중국 당국은 자국 은행에 북한과의 거래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도 줄였다. 물론 공식 발표는 없었다.
이처럼 중국 당국이 북한 핵실험 이후 드러나지 않게 실시한 대북(對北) 압박 조치들은 중국이 지금까지 고수해 온 ‘내정 불간섭’ 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6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중국이 대외정책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보인 것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중국이 올 한 해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에 두 차례나 찬성표를 던지고 강력한 대북 압박 정책을 사용한 것 자체가 그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한편 유엔의 한 소식통은 “지금 중국에선 북한과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북한과의 오랜 우호관계를 중시하는 군부 인사들의 논리를 차츰 압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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