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신(新)강철서신’

  • 입력 2006년 11월 13일 03시 00분


1986년은 한국 학생운동사의 분수령이 된 해다. 그해 봄에 나온 ‘강철서신’ 등 5건의 문건 때문이다. 당시 인천 부평에서 후배들의 노동운동을 지도하던 서울대 법대 82학번 김영환 씨가 ‘강철’이라는 필명으로 쓴 이 글들은 민족해방(NL) 계열을 단번에 학생운동의 주류로 올려놓았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에서 출발했으나 1980년대 들어 사회주의와 반미(反美) 사이에서 방황하던 학생운동의 이념적 지향점이 ‘강철’의 영향으로 김일성 주체사상에 맞춰진 것이다.

▷강철서신은 김정일 명의로 1982년 발표된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글에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지만, 문체가 간결하고 힘찬 데다 이해하기 쉽도록 쓰여 주체사상의 확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당시 북한 주석 김일성은 강철서신을 읽고 감명 받아 영어 일본어 아랍어 스페인어 등 4개 언어로 번역해 전 세계에 배포하도록 했다. 북의 주목을 받게 된 ‘강철’은 북한 간첩의 접촉을 받고 노동당에 입당한 뒤 1991년 잠수정을 타고 북한에 들어가 김일성을 만난다.

▷그러나 북한 방문은 그가 주체사상과 결별하는 계기가 된다. 그가 목격한 것은 한마디로 ‘죽은 사회’였다. 주체사상이 그토록 강조해 온 인간의 자주성과 창의성이 아예 말살된 체제였던 것이다. 주체사상을 연구한다는 북한 학자들도 그와의 토론에서 판에 박힌 얘기만 낡은 레코드를 틀듯 반복했다. 이후 북한과 거리를 두던 그는 1996년 마침내 “북한 정권은 인민의 반대편에 있다. 우리는 혁명가로서 인민의 편에 서서 싸워야 한다”는 선언과 함께 전향한다.

▷그 후 북한민주화운동에 몸을 던진 김 씨는 최근 ‘일심회’ 사건에 대해 “맹목적으로 북을 추종하던 얼치기 운동권의 시대착오적 망상에서 비롯됐다”고 규정했다. 수백만 인민이 굶어죽는데 최고 권력자는 한 병에 500만 원짜리 포도주를 즐기며 핵 개발에 몰두하는 북의 실상이 세계에 알려진 마당에 아직도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주사파 운동권의 ‘맹목(盲目)’을 질타한 것이다. 강철서신 만 20년 뒤의 ‘신(新)강철서신’이랄까.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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