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서울로 올라오는 안 검사는 토요일 아침 일찍 아이를 보러 남편과 함께 춘천으로 향했다. 아이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 뒤 이튿날 새벽 안 검사는 김천으로 다시 내려가야 했다.
검찰 내 부부 검사는 모두 14쌍. 1, 2년에 한 번씩 각기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 이들 부부 검사 중에는 이처럼 ‘세 집 살림’을 하는 사례가 많다.
부부 검사 14쌍 중 13쌍은 아내 쪽이 1993년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임관한 지 10년이 되지 않은 ‘신세대’들이다.
판사를 배우자로 맞은 여검사는 10명이고, 남편이 변호사인 여검사는 5명이다. 검사 부부보다는 적다.
한 중견 여검사는 “동기 중에 총각 검사들은 부장이나 동료 검사의 소개로 주말마다 맞선을 보러 나가곤 했지만 여검사들은 그런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전했다. ‘대가 세지 않겠느냐’는 여검사에 대한 선입견과 격무, 잦은 지방근무 때문에 특별히 약혼자가 없는 여검사들은 만날 수 있는 상대가 현실적으로 동료 남자 검사나 사법연수원 동기로 제한된다는 것.
○ 전체 수는 늘었지만 여전히 비주류
사법시험 합격자가 1000명 안팎으로 늘어난 데다 사회 전반적으로 불고 있는 ‘여풍’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검찰청, 법무부,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 내 3대 선호 근무지에서 여검사는 아직은 홍일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992년 세 곳에 근무한 검사 216명 중 여검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1993년 김진숙 대검찰청 부공보관(사시 32회)이 서울지검에 발령을 받아 고군분투했고, 2004년까지도 세 곳에서 근무한 여검사는 8명(전체 279명 중 2.9%)에 그쳤다.
그나마 올해 들어 여검사가 대검, 법무부, 서울중앙지검에 대거 배치되면서 299명 중 15명(5%)으로 늘었다.
여검사의 출신 대학은 서울대(37명) 이화여대(35명) 고려대(34명) 연세대(26명) 등 4개 대학 출신이 절대 다수(180명 중 73.3%)를 차지하고 있다.
여검사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2004년부터는 다른 대학 출신의 진출도 활발해져 지금은 부산대(7명) 한양대 경북대(각 6명) 성균관대 외국어대 전남대(각 5명) KAIST 숙명여대(각 3명)가 3명 이상 배출했다.
○ ‘영감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조 부장검사 이후 올해 2월 이옥(사시 31회) 법무부 인권옹호과장, 김진숙 대검 부공보관이 나란히 부장검사로 승진했다.
김 부공보관은 1999년 광주지검 근무 때 ‘여성 특수부 검사 1호’ 기록을 세웠다.
이들 고참 여검사들은 초임 시절 많은 해프닝을 겪었다. 검찰 내에선 보호 대상이었고 민원인들에겐 여직원으로 비친 것.
김 부공보관은 “임관 후 5년 동안은 검사실에 앉아 있으면 피의자 등이 와서 ‘왜 이 방은 여직원이 2명이지’하고 묻곤 했다”며 “남자 수사관이 조사할 때 뭘 물어보면 ‘아가씨가 웬 참견이냐’는 식으로 쳐다보더라”고 전했다.
이들 고참 여검사가 공통으로 전하는 초임 시절 기억은 ‘영감님’에 관한 얘기다. 이들은 “주로 나이 든 민원인들이 찾아와서 ‘영감님’이라고 부를 때 곤혹스럽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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