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권까지 위협받는 대통령 권력의 무기력함을 역설적으로 토로한 것이라는 분석들이지만 임기 중 하야하면 조기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는 것이고, 당적 이탈이 결행되면 여권발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된다는 점에서 정치판은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게 된다.
노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청와대 참모들은 '임기 중 하야' 가능성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일축하고 있는 반면 탈당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단할 수 없다" "두고 봐야 한다"며 긍정도 부정도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의 입장을 취하며 가능성을 열어두는 해석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 언급에 대해 현재까지 나온 청와대의 공식적 반응은 "심경과 각오를 얘기한 것"이라는 윤태영 대변인의 짤막한 코멘트가 전부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주석을 달 필요가 없이 발언 그대로 읽어달라는 주문이다.
우선 "임기를 마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 참모들의 반응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데서 대부분 일치했다.
청와대 참모 A 씨는 노 대통령이 하야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헌법기관장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까지 바꾸라고 하고, 임명된 KBS 사장까지 다시 뽑으라고 하는 상황에 대한 절박감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다른 참모 B 씨는 "하야에 대한 논의는 일체 없다"고 못 박았다. 참모 C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그런 표현까지 했겠느냐. 그 심경을 읽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에 대한 반응은 사뭇 달랐다. 실제 노 대통령의 당적 관련 발언은 "가급적 불행한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당적을 포기하는 일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해 임기 관련 어법과는 달랐다.
임기 관련 발언은 힘들고 어렵지만 임기를 마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탈당 관련 발언은 탈당하고 싶지는 않지만, 자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탈당 선택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현실'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참모 A 씨는 탈당 가능성에 대해 "있을 것이다, 없을 것이다라고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고, 다른 참모 B 씨는 "탈당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상황에 대한 인식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은 당·청 관계에 대한 인식을 뜻한다고 부연했다. 노 대통령이 추진하는 각종 정책이나 인사권이 여당으로부터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됐다.
그렇지만 또 다른 참모 C 씨는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이 탈당 쪽으로 방향을 잡고 수순에 들어갔다고 해석하는 것은 틀린 해석"이라며 "청와대 내부적으로 탈당 얘기가 가닥이 잡히고 거론되거나 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정국의 상황, 당·청 관계, 당내 분위기 등에 따라 유동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당 일각에서 정기국회가 폐회되는 다음달 9일 이후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할 것이라는 식으로 탈당 시점까지 거론되는데 대해 "그런 판단까지 간 것은 아니다"며 말했다.
대체로 청와대 참모들은 노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을 완전 차단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탈당 결행을 위한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지방선거후 "탈당은 하지 않겠다"고 수 차례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노대통령이 탈당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으로 인식을 전환했지만, 실제로 노 대통령이 탈당을 결행하기까지에는 이를 가로막는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차기 대선 승리라는 '정치적 셈법'이 우선인 여당 입장에서는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의 결별을 위해서 탈당을 요구하는 입장이 제기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시점의 당·청 결별이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통령 탈당은 곤란하다"는 당내 반대 입장도 적지 않다.
또 1년이 넘는 남은 임기 동안 "국정운영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노 대통령으로서도 탈당을 한다고 해서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야당이 초당적 국정운영에 협조해준다는 보장도 없고, 낮은 지지율 때문에 국민을 상대로 직접 정치를 하기도 힘겨운 상황이다.
임기말로 접어드는 시점이고, 역대 대통령의 탈당 사례가 있기 때문에 탈당 문제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이를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는 여러 변수들이 있다는 것이 청와대 참모들의 공통된 인식으로 보인다.
청와대 참모 D 씨는 "당과의 관계, 특히 당이 어떤 진로를 갖고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탈당문제도 섣불리 단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가급적 당적을 갖고 남은 임기 국정운영을 하고 싶지만, 원치 않는 탈당을 결행할 것인지 여부는 결국은 당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디지털뉴스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