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효]다음 6자회담도 어려운 이유

  • 입력 2006년 12월 4일 03시 00분


1993년 창설된 아시아태평양안보협력이사회(CSCAP)는 민간 전문가와 전직 관료가 정부에 구애받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장(場)으로 성장해 왔다.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내용이 있으나 공식 외교 창구에서 개진하기 어려운 민감한 내용이 오고 가는 경우가 있어 많은 회원국은 정부 측 참관자를 파견한다. CSCAP 내부에서 대량살상무기(WMD)의 비확산 문제를 다루는 CSCAP WMD 회의에도 북한이 빠짐없이 대표단을 파견했는데 이번 4차 회의는 지난주 베트남의 다낭에서 열렸다.

평화군축연구소 소속이라며 명함을 내미는 북한 참가자를 곧이곧대로 민간 대표로 간주할 순진한 사람은 없다. 중요한 점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담론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도록 유도하고 핵 폐기의 불가피성을 깨닫게끔 하는 일이다. 이번에도 북한 대표단의 기조 발표는 상투적인 언사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점에서 새삼스럽지 않았다. 다만 회의 때마다 강조점을 두는 포인트가 달라지곤 했는데 핵실험 이후 처음 열린 이번 모임에서 북한이 자신의 핵무장을 기정사실화하는 단정적인 표현을 수차례 사용한 점이 눈에 띄었다.

北 핵무장 기정사실화 기도

CSCAP 회의에 참석한 북한 대표단이나 같은 기간에 6자회담의 재개 논의를 위해 베이징에 온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미국이 먼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풀어야 핵 문제에 관한 다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언급한 모습은 입을 맞춘 듯한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북한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며 ‘악의 축’이니 ‘폭정의 전초기지’니 하는 ‘막말’을 해 온 미국 조지 W 부시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최후의 자위수단으로 핵무기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렇다면 빌 클린턴 집권기에 조명록 차수를 워싱턴에 보내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으로 초대하며 화해 무드를 드높였던 북한이 뒷전에서는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사들이는 등 핵무기 개발에 한층 박차를 가했던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북한을 상대할 때는 외교적 언사와 숨은 의도를 가려서 이해해야 한다. 명분으로는 못된 미국이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지만 실제로는 아쉬운 돈줄은 우선 풀어 주되 핵 포기는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다.

CSCAP 회의의 주최 측은 남북한 참가자끼리 따로 대화하는 시간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별도의 점심 테이블을 마련하는 성의를 보였다. 한 민족끼리 정담을 나누는 것은 좋아도 “미국이 우리를 좋아할 때까지는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방침을 반복하는 북한을 상대하면서 본질적인 문제를 푼다는 것은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한국이나 미국이 아무리 솔깃한 제안을 해도 이에 대한 답변은 평양에 돌아가 논의한 뒤 정하겠다는데 어찌할 것인가.

정작 평양에 앉아 있는 높으신 분의 마음속에는 이미 만들어 놓은 핵무기를 버리면서까지 북한 정권의 새로운 진로를 탐색해 볼 배짱이 아직 구비되지 않은 것 같다. 북한 핵 문제는 국제사회가 무엇을 주고 그에 대한 대가로 풀릴 문제라기보다는 북한 정권이 자신의 존립 기반으로 여기는 핵무기의 가치에 견줄 만한 다른 어떤 대안에 눈을 뜨는 순간까지 보류될 문제다. 미국과 한국이 요청해도 못 들은 척하던 북한 당국이 중국의 압력 때문에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혔다지만 6자회담의 불씨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넘어 6자회담이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까지는 아직 중국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금융제재 먼저 풀라” 배짱

그래도 북한의 핵 보유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회담을 종용하고 현금과 물자 지원을 통제해야 하는 이유는 북한의 핵 능력이 더는 확대되지 못하도록 동결한 채 외교적 결말을 도모하는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최상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의 제6라운드는 성사될지라도 본질적인 진전은 보기 힘든 어려운 게임이 될 것이다. 다낭 CSCAP 회의 사회자의 마무리 코멘트가 귀에 맴돈다. “잔에 물이 어느 정도는 차 있어야 반이나 찼노라고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우리 앞의 잔은 아직도 비어 있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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