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연공서열-직함은 잊어라”
지난주 서울 견지동 ‘안국포럼’ 사무실에서 열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선캠프 실무진 회의. 이 전 시장은 “우리 사무실은 앞으로 할 일이 많을 테니 기존에 있던 사람이나 새로 온 사람 모두가 서로 존중하면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캠프 내 불협화음이 생기고 있다는 소문이 이 전 시장 귀에까지 들어간 뒤 나온 반응이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짧게 한 말이었지만 실무진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전 시장이 캠프를 꾸려가는 스타일은 연공서열과는 거리가 멀다. 철저하게 실무 위주의 업무 분장과 결과물을 중시한다. 주변에서는 과거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시절 효율성을 강조하는 리더십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인지 이명박 캠프에는 실세도, 측근도, 2인자도 없다고 한다.
이 전 시장 캠프 사람들의 명함에는 ‘안국포럼 ○○○’라는 이름과 전화번호만 있고, 직책이 빠져 있다. 명함 한쪽 구석에는 작은 글씨로 일련번호(AF△△△)가 적혀 있다. AF는 안국포럼의 영문 이니셜이고 뒤의 숫자는 캠프에 합류한 순서를 일련번호 형태로 나타낸 것. 현재 30번 정도까지 부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함부터가 철저하게 실무형이다.
초창기 멤버들이 “서열을 규정하지 말고, 이후에 여러 사람이 들어올 텐데 그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자”며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괜히 직함을 통해 서열이 정해져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단지 언론에 소개될 때 편의상 공보특보 등의 직함을 쓰고 있을 뿐이다.
말과 자리를 중시하는 기존 정치권의 선거캠프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 전 시장의 캠프 운영 스타일은 생소하다.
많은 사람이 캠프에 합류하기 전에 직함이나 자리를 먼저 요구하지만 이 전 시장은 ‘말’보다는 먼저 ‘행동’으로 가시적인 결과물을 보여 주길 원하기 때문이다.
최근 캠프에 합류한 한 실무진은 “처음 들어온 분들은 대강의 역할 설명만 들을 뿐 이후에는 스스로 캠프 내 자기 역할을 개척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캠프는 업무 위주로 분업화가 잘돼 있는 편이다. 안국포럼에 상근하는 실무진은 10여 명 선. 수행비서는 물론 카메라 담당자, 속기록 담당자가 항상 따라다니며 이 전 시장의 행동과 말을 모두 기록한다. 일정, 공보, 인터넷, 대학생 조직, 학계, 정무 등 분야별 실무 담당자도 따로 정해져 있다.
이 전 시장은 정책에 관해선 일단 자문교수나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묻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고 한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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