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의 무대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의 유엔 출입기자단(UNCA) 송년 만찬회장.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과 쓰나미(지진해일) 피해지역 지원활동으로 UNCA 공로상을 받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도 참석했다. 연설에 나선 반 차기총장은 농담으로 운을 뗐다.
“나는 성이 반(Ban)이지만 제임스 본드(Bond·미국식 영어에서는 ‘반’과 비슷하게 발음된다)와는 달리 ‘007’이 아닌 ‘07’을 코드네임으로 쓰려 한다. 2007년부터 임기가 시작되고, 사무총장 인수준비작업도 정확히 7주일 걸린다.”
조크는 자신의 외교적 화술과 별명에 관한 것으로 이어졌다. 그는 “한국에선 기자 질문을 잘 피해간다고 해서 기름장어(slippery eel)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요즘 뉴욕에선 테플론 외교관(Teflon diplomat·표면이 코팅된 테플론 프라이팬에서 나온 말로 어떤 공격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 외교관이라는 뜻)이란 별명을 새로 얻었다. 여러분의 매서운 비판도 잘 피해 나갈 자신이 있다.”
예상하지 않았던 조크 공세에 만찬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연설의 하이라이트는 사무총장을 산타클로스에 비유한 부분. 그는 ‘산타할아버지 오신다네(Santa Clause is coming to town)’라는 캐럴을 ‘반기문, 유엔에 온다네’로 가사를 바꿔 직접 불렀다.
아난 총장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반 차기총장은 “아난 총장의 신발(남긴 족적이라는 뜻)은 너무 커서 내가 채울 수 없을 정도”라며 “그의 염소수염(아난 총장의 수염), 목을 덮는 스웨터(아난 총장이 즐겨 입는 옷) 등 그의 패션을 따라가기는 힘든 만큼 아예 아난 총장의 전속 재단사를 고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해 다시금 폭소를 유발했다.
간간이 뼈 있는 말도 했다. 그는 “한국에는 ‘언행일치’라는 말이 있다. 말에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꼭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 출입기자들과도 건설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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