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비보이의 변절

  • 입력 2006년 12월 13일 03시 01분


듣던 대로 성황이었다. 비보이(B-boy·브레이크댄싱을 추는 남성)를 주제로 한 무언극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비사발)’는 길거리 춤꾼 비보이를 극장으로 불러들인 첫 공연이다. 프리마돈나를 꿈꾸던 발레리나가 비보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거리 문화와 춤에 동화되는 과정을 대사 없이 춤으로만 풀어 냈다.

1시간 반 동안 펼쳐지는 브레이크댄싱의 향연은 이 공연이 스타 하나 없이 입소문을 타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비보이들의 신기(神技) 때문만은 아니다. 관객과 하나가 되는 공연장 분위기 때문이다.

이 공연에는 ‘관전 매너’란 게 없다. 큰 소리로 휴대전화 통화를 해도 괜찮고 사진, 동영상 촬영까지 마음대로다. 관객들은 흥이 나면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춤춘다. 남녀노소, 황·백·흑인종이 하나가 되는 공연장은 가르고 나누기 일색인 바깥세상과는 딴판이다.

‘비사발’은 아웃사이더, 비주류 문화의 성공적인 제도권 안착을 보여 준다. 아니, 아예 ‘발레리나’로 상징되는 기존의 주류를 대체해 버렸다. 하긴, 이젠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모호한 세상이다. 안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고객(남)이 인정해 줄 때’이다. ‘비사발’이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남을 보려면 ‘나’를 깨야 한다. 나의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을 읽어야 타인의 니즈(needs)가 보인다는 말은 수많은 경영 구루(스승)의 가르침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경쟁자를 이기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것’이라는 블루오션 전략도 고정관념에 대한 경계를 의미한다.

블루오션은 지금까지 옳다고 품었던 생각에 대한 배신이고 변절이다. 기존 가치를 배반해야 ‘다른 세계(블루 존)’가 보인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꾸는 것은 존재에 대한 부정, 즉 정신적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을 해석하는 어떤 고정된 논리 체계가 있다거나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특히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업인 지식인들에게, 더구나 그 기록이 요행히 시류와 맞아 타인의 삶에 영향을 끼쳐 명성까지 얻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일 자체가 때론 순교보다 어려울 수 있는 배교다.

역사 속 위인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말해 버리는 바람에 ‘변절자’로 평생을 살다 간 사람도 많지만, 반대로 남들이 다 생각을 바꾸었는데 고집을 피우며 심지어 그것을 의리나 순수라고 행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심리는 한마디로 집착이다. 혹은 변하지 않아야 보장받는 공적 사적 이득 같은 게 깔려 있다. 아니면 생각하기를 멈춘 게으름이거나 한때 그런 생각을 했던 시절을 ‘추억’이라는 감정의 액세서리로 갖고 싶다는 치기인 경우도 있다.

‘핵실험’을 계기로 동포에게 품었던 마지막 연민까지 걷어 간 북한 정권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것은 이제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정직의 문제다. 현실에도 없는 ‘이념’이라는 판타지를 좇는 것도 모자라 ‘진보’라는 억지를 부리는 간첩단은 심리치료부터 받아야 한다. 변하는 세상에 눈과 귀를 막는 진보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허문명 교육생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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