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여명’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전후해 언론에서 사용빈도가 부쩍 늘었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른바 ‘강성대국’ 건설의 기틀을 열었다는 선전을 하기 위한 상징어라고 풀이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말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후계구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강성대국 과시용’=사전적 의미로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이란 뜻의 여명이란 말이 눈길을 끈 것은 핵실험 한 달 전인 9월 8일자 노동신문 정론(논설)이 “동무들, 이제는 고생 끝에 낙을 보게 되었소, 우리에게 여명이 밝아오고 있단 말이오”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하면서부터.
올해 7월 8일자 노동신문 사설은 “우리 군대와 인민 앞에는 지금 강성대국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고 썼다. 또 12월 2일자에는 “강성대국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항일 빨치산’ 활동에도 이 말을 사용했다. 본보가 입수한 북한 작가동맹 기관지 ‘조선문학’ 9월호에 실린 ‘붉은 여명’이라는 시에서는 “우리 수령님(김일성)이 조국해방의 여명을 불러온 것처럼…”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월별 사용 횟수를 살펴보면 6월까지 10회 미만이었다가 미사일을 발사한 7월 39회에서 8월 40회→9월 101회→10월 128회로 급증했다.
▽3대 세습의 전조(前兆)=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여명’이라는 표현을 후계구도와 관련해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기동 센터장은 “여명이라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의미하는 것으로 강성대국을 넘어 새로운 태양, 즉 후계자가 떠오르고 있음을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후일 북한이 후계자의 특출한 지도력과 역량 덕분에 핵 보유를 통한 군사강국으로서의 쾌거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선전할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극단적인 대외 강경노선을 걷던 시점에는 권력승계와 관련한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과 1·21 청와대습격사건은 김 위원장으로의 권력승계가 준비되던 시기였고, 1993∼94년의 1차 북핵 위기 때는 권력승계가 마무리 되던 시점이었다.
김 위원장만을 지칭하던 ‘혁명의 수뇌부’라는 용어의 사용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올해 들어 북한 문건들은 ‘대를 이어 혁명을 계승하자’며 김 위원장을 ‘두리(중심)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자’는 주장을 편다. ‘혁명의 수뇌부’가 김 위원장과 그 후계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북한이 최근 김일성 주석 부자의 10대 때 영웅담을 적극 선전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 김 주석이 14세이던 1928년 타도제국주의 동맹을 결성했고 김 위원장도 14세이던 1956년에 백두산혁명전적지 답사행군을 성공리에 마쳐 혁명전통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주장. 연소한 후계자의 3대 세습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등장할 당시의 키워드는 ‘당 중앙’이었다. 그는 1974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당 중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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