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기조연설문 전문

  • 입력 2006년 12월 13일 12시 03분


오늘 “북한 핵문제와 대북정책”을 토론하는 ‘2006 정당‧〮종교‧시민사회단체 공동회의’에 초청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리며, 민족의 화해 협력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해 오신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 입니다.

오늘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지 1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지난 15년간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하여 노력해 왔으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단 고착을 위한 ‘평화 지키기’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적극적인 ‘평화 만들기’가 얼마나 어렵고, 많은 대내외적인 도전을 이겨내야 하는 과정인가를 통감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문제는 남-북간의 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미국의 영향력이 대단히 큽니다. 우리 내부에서의 갈등을 극복하는 문제 또한 쉬운 일이 아님을 경험해 왔습니다.

2007년 새해에는 대내외적으로 더 많은 도전과 또한 기회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지난 15년간 정부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직‧간접으로 관여해온 경험을 토대로, 여러분과 함께 <남북기본합의서>의 의의를 상기해 보고, 미-북관계와 북핵문제, 그리고 대북정책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의의

1990년 국제냉전의 종식은, 한반도를 냉전의 외딴 섬孤島으로 남겼지만 불신과 대결을 유지해온 남북관계에 순기능으로 작용했습니다. 남과 북은 분단사상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국무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을 개최하고, 한반도에서도 냉전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협의하였습니다. 예비회담을 포함하여 3년간의 진지한 협의를 통해 마침내 탈냉전을 지향하는 새로운 남북관계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과 북은 서로 인정하고, 남과 북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평화와 통일의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당면한 과제로, 상대방 체제를 인정‧존중하고 화해하며,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을 실시하고, 불가침, 즉 전쟁을 하지 말 것과, 이를 위해 군사적 신뢰구축과 대량살상무기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비감축을 실현하고, 현 정전체제를 남북 사이의 평화체제로 전환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화해, 교류협력, 불가침, 군비통제, 평화체제, 이 5가지 과제는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키고 평화와 통일에 이르는 과정에서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추진해야 하는 과업이라는데 합의한 것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평화통일은 갑자기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힘을 합쳐 점진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임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 성립된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이 1989년에 채택하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 이어,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담은 3개의 분야별 <부속합의서>가 채택되고, 실천기구인 4개의 ‘남북공동위원회’도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핵문제가 제기되자, 새로 집권한 문민정부는 “핵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남북관계 개선과 핵문제 해결을 병행 추진하는 ‘병행전략’을 버리고, 남북관계를 핵문제에 종속시키는 ‘연계전략’을 채택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핵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남북관계도 개선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모처럼 남과 북이 슬기를 모아 마련한 <남북기본합의서>는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문화되었고, 남북관계는 경색된 채 소중한 5년이라는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지 8년의 세월이 지난 후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는 부활하게 되고, 실천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남북 화해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유럽에서는 헬신키협약 체결 이후 동서진영간 15년간의 화해(데탕트)과정을 걸쳐 독일의 통일, 소베트연방의 해체, 공산체제의 붕괴, 그리고 마침내 냉전을 종식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 미-북 적대관계의 지속으로 북핵사태를 초래하고, 남북관계 개선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 속도가 더디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오늘의 현실입니다.

앞으로도 남북 사이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제시한 대로 화해와 협력, 불가침과 군비통제 그리고 평화체제를 실현해 나가면서, 동시에 미-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을 병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미-북관계와 북핵문제

1970년대초 미국은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하여 남북한에 대한 4대 강국의 교차승인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국제냉전이 끝나면서 러시아와 중국은 대한민국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한은 유엔에 함께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의 주요국가들이 모두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나, 이유가 어떻든 미국과 일본만이 아직도 북한을 승인하지 않고 있으며, 계속되는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가 한반도의 불안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공산권이 붕괴되면서 북한은 생존을 위하여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지상과제로 삼아 왔습니다. 제가 수차 북한의 최고당국자와의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그는 미국을 두려워 합니다. 그리고 미국을 불신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채택된 직후 그는 고위급 인사(김용순 당비서)를 미국에 보내 외교관계 수립을 제의하며, 한반도의 평화유지를 위한 미군의 남한 주둔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통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미국의 동북아전략으로 인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핵 카드’를 사용하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미국과 관계정상화가 되기 전에는 핵개발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것입니다.

북핵문제 해결은 미-북 적대관계 해소와 관계정상화 과정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미국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1994년 <미-북 제네바기본합의>와 2005년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은 모두 북핵 폐기와 미-북관계 정상화를 연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든지 결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일본, 대만의 핵 개발을 촉발할 것이고, 동북아는 그 만큼 더 안보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핵무기가 억제력이 될 수 없으며, 핵무기는 파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결코 사용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핵무기 보유는 오히려 더 큰 재앙을 초래하게 되며, 외부원조와 경협의 차단으로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게 될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북핵문제는 조속히 해결되어야 하며,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군사적 조치가 아니라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反核, 反戰, 平和의 입장을 계속 고수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미-북관계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한반도 평화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 우리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핵무기 없는 세계“ 실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무기를 모두 폐기하고, 핵실험을 전면적으로 금지(CTBT)함으로써 핵 확산을 방지(NPT)해야 할 것입니다.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핵무기가 없는 나라들을 위협하는 한 핵 확산을 방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인도가 핵무기를 보유하니 파키스탄도 보유하게 되고,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하니 중동국가들이 핵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북핵문제가 제기된 지 15년이 되었습니다. 1991년 겨울, 남한에 배치되었던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완전 철수하고, 우리정부가 한반도비핵화를 제의하고, 북한이 ‘핵전쟁연습’이라며 반발해온 팀스피리트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비로소 북한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채택에 합의하고, 국제핵사찰을 받아 드렸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자 북한은 1993년 NPT탈퇴 위협으로 북-미고위급회담을 성사시켰고, 양측은 핵문제와 관계정상화 문제의 일괄타결, 즉 포괄적 해결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정부의 반대로 무산되

자 이에 반발한 북한은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금지선)을 무시하고, 연료봉 추출을 시도하였고, 미국은 이를 응징하기 위해 군사공격을 추진했습니다.

평양에서의 지미카터-김일성 합의는 위기를 모면하게 했고, 미-북협상을 통해 <제네바 미-북기본합의>(1994.10.)가 채택됩니다. 이 합의에 따라 북한은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 핵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단계적으로 핵시설을 폐기하며 검증을 받기로 했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단계적으로 제재를 해제하며 외교관계를 수립해 나가는 한편 전력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경수로를 건설하여 제공하며 중유를 공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단계적으로 주고 받는 식으로 해결책을 마련한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는 제네바합의를 지지하고, 미국을 도와 경수로 건설비용의 대부분을 분담하는 한편 미국과 공조하여 남북관계 개선과 미-북관계 개선을 병행 추진하였습니다. 우여곡절이 없은 것은 아니자만, 제네바합의는 미-북관계 개선에 진전을 가져왔습니다.

미-북관계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미-북공동코뮈니케>(2000.10)가 채택되고, 북한의 조명록 특사와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교환방문이 이루어지고,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방문이 추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실현되었다면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네바합의는 2002년말 부시 행정부가 중유공급을 중단하고 이에 맞서 북한이 핵 활동을 재개하면서 파기될 때까지 8년간 지켜져 왔습니다.

2001년에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부정(ABC ; Anything But Clinton)하고, 북한정권을 ‘사악한 정권’이라며 이를 붕괴시키기 위해 지난 6년간 압박과 제재를 가해 왔으나, 오히려 북한을 자극하여 핵과 미사일 개발을 촉진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북한을 협상상대로 인정하고 주고 받기식의 협상을 하기 보다는 굴복을 강요하면서, 악의적으로 방관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보유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제네바합의를 통해 핵개발을 동결시킴으로서,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제네바합의 이전에 확보한 8kg(핵폭탄 1-2개분)정도에 불과했고, 또한 미사일 개발 및 발사 유예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제네바합의를 파기한 결과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이 크게 증가하여 핵폭탄을 6-8개 만들 수 있는 분량인 40-50kg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또한 유예되었던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발사를 초래했습니다. 클린턴의 포용정책은 성공했으나 부시의 적대정책은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15년 동안 미국의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대북 접근방법을 경험했습니다.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와 공화당의 부시 행정부의 대북시각, 대북정책, 당면목표와 접근방법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클린턴은 북한의 점진적 변화가 가능하며 현존 정권을 상대로 관계를 개선하여 북한을 국제사회에 이끌어내어 순화시키려는 포용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핵확산 방지와 비핵화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당면과제로 설정하고, 양자협상을 통해 단계적으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포괄적 접근으로 상호위협감소(MTR ; Mutual Threat Reduction)의 과정을 통해 핵문제도 해결하고 관계정상화도 추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부시는 북한은 제거해야할 ‘사악한 정권’이며, 모든 문제는 정권교체를 통해 해결한다는 압박과 봉쇄의 적대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사악한 정권과는 마주 앉을 수 없다며 양자회담을 거부했습니다. 네오콘 강경파는 ‘악한 행위에 대한 보상은 있을 수 없다’며 제네바합의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고농축우라늄(HEU)계획 의혹을 왜곡‧과장하여 제네바합의를 파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뒤이어 6자회담을 통해 반북연합전선을 형성하여 먼저 핵을 폐기하도록 북한을 압박하고 굴복을 강요하는 전술을 사용했으나 아무런 진전도 보지 못했습니다.

부시는 9.11사태이후 북한정권을 이라크와 이란과 함께 ‘군사적 선제공격’으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선포하고, 먼저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사태의 악화와 한반도의 특수성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선제공격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지자, ‘비군사적 방법’으로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북한정권을 교체시키려는 전략으로 전환했습니다. 즉 ①경제제재와 봉쇄조치, ②인권개선조치(Human Right Initiative), ③불법행위 제재조치(Illicit Activities Initiatives), ④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조치(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압정책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해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2005.2.)하고 사용후 연료의 재처리를 추진하자, 6자회담에서는 북핵문제 해결의 원칙을 제시한 <9.19.공동성명>을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합의한 원칙에 입각하여 북한과 미국이 이행해야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1년 이상의 시간이 허비되었습니다.

북한의 도발적인 핵실험(2006.10.9.)과 그 이후 전개된 최근의 상황은 부시행정부가 더 이상 ‘악의적 방관’만을 지속할 수는 없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공화당이 지배하는 미 의회에서조차 잘못된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조정하고 대북협상을 주도할 대북정책조정관을 임명하라는 결의안이 채택되었습니다. 11월의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와 포용정책을 주장하는 민주당이 승리했습니다. 중간선거 이후 힘에 의한 일방주의적 외교와 대북 강경노선을 주도해온 네오콘들이 퇴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시행정부는 대북정책을 조정할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최근 부시 대통령은 ‘한국전쟁 종전선언’문제를 언급했는데 이는 미-북 적대관계 해소를 위해 필요한 조치가 될 것입니다. 또한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거부해온 부시 행정부가 베이징에서 두 차례에 걸쳐 미-북 양자회담을 갖고 여기서 타결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6자회담도 곧 열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북한도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가 드디어 북핵문제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을 시도하려는 것인지는 조만간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핵문제 해결에는 몇 가지 고려되어야할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 핵문제는 안보위협이 해소되어야 해결이 가능하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아공이 이웃나라 앙고라에서 소련군과 쿠바군이 철수하고 안보위협이 해소되자 자진해서 핵무기를 폐기한 것이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상대방을 제거해야할 사악한 정권이며, 군사적 선제공격의 대상이오, 핵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위협 한다면 핵무기 개발을 포기시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둘째, 핵문제는 검증을 통해 신뢰가 조성되어야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장시간이 소요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상호신뢰가 조성되지 않는 한 핵문제는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북핵문제는 이미 15년이 되었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하드라도 실천을 통해 신뢰가 조성되고 완전 해결에 이르기까지는 앞으로도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북핵문제는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미-북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이 북핵문제 해결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해결을 도와 줄 수는 있겠지만, 미국을 대신하여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안보위협을 제거해 주어야 할 나라는 미국이고, 경제제재를 해제해 주어야 할 나라도 미국입니다. 그리고 적대정책을 버리고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야 할 나라도 미국입니다. 미국을 대신해줄 나라는 없습니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한다거나, 핵문제가 해결되어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던가, 핵문제가 해결되어야 남북경협을 확대할 수 있다든가하는 주장은 북핵문제의 본질을 잘 못 이해한데 기인하는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는 그 동안 네오콘이 주도한 ‘북한정권 교체를 통한 대담한 해결’이라는 비현실적인 접근방법을 버리고, ‘페리 프로세스’를 교훈삼아 한반도에서 ‘탈냉전의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면서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북핵 폐기와 비핵화를 당면목표로 하여 상호위협을 감소하며, 북한의 붕괴가 아니라 변화를 유도하고, 북한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안전보장, 경제제재가 아니라 경제지원, 그리고 적대관계가 아니라 관계개선을 통해 풀어 나가는, 유일초대강국으로서의 아량과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은 이미 <9.19공동성명>을 통해 합의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제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구체적 실천방안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실천하면서 상호신뢰를 조성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있으면 ‘해결의 방법’은 있기 마련입니다.

◆대북정책 방향

이 시대의 우리의 지상과제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우선 한반도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프로세스를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한반도냉전은 남북의 불신과 대결관계,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 북한의 폐쇄성과 경직성, 대량살상무기와 군사적 대결태세, 그리고 정전체제 등이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일희일비하거나 대증요법으로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냉전구조 해체라는 근본적인 해결을 추구하면서 현안을 해결해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숲을 보고 나무를 보고 가지와 잎을 논해야 할 것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화해, 교류 협력, 불가침, 군비통제, 그리고 평화체제의 확립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하여 상호의존도를 제고하면서 군비통제를 실현하여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남과 북이 서로 오가도 돕고 나누는 ‘사실상의 통일상황’을 실현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 관광사업의 확대 발전, 남북 철도‧도로의 운행, 군사적 신뢰구축조치의 추진 등 기존의 사업들을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협사업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남북 군비통제의 실현은 북핵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변화’를 추구하는 전략이 중요합니

다. 최고당국자만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북한체제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북측 최고당국자와의 직접 대화가 필수적입니다. 필요시 수시로 특사를 교환하고 또한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의사소통을 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대통령특사를 파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의 적대정책으로 경색되었던 남북관계를 ‘원상회복’키로 합의한 2002.4. 특사 파견과, 6자회담의 재개를 이끌어낸 2005.6.의 특사 파견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또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하여 민간차원에서 보다 많은 접촉과 교류를 계속 확대 추진하고, 인도적 지원을 지속해야 합니다. 북한의 어려운 식량사정을 고려하여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식량과 비료 지원을 재개하는 것은 남북관계 경색을 푸는 하나의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방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북핵문제를 남북관계 개선문제와 연계시키지 말고 양자를 병행 해결하는 슬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북핵문제 해결은 미-북관계 정상화와 연계된 것으로서, 우리가 네오콘 강경파의 잘못된 대북 접근방법에 추종하고 남북관계를 파탄시킨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남북관계를 발전시킴으로서 북측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대외적 입지도 강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북관계를 파탄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대북정책조정관 임명을 호기로 활용하여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접근방법을 마련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8년전 ‘금창리 지하핵시설 의혹’과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에 안보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국민의 정부는 미국의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된 페리팀을 설득하여 ‘한반도 냉전종식을 위한 포괄적 포용정책’을 채택케 하고, 한-미-일 3국이 공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대증요법이 아니라 외교, 안보, 경제, 통상 등을 포괄하는 장기적 접근방법을 통해 안보위기를 해소하고, 관계개선을 진척시켰던 경험을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6자회담을 통해 미-북협상을 측면 지원하고, 합의이행을 촉진시키는 역할과 함께 주변국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 안보와 협력체제를 확립해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난관과 시련에 직면하드라도 <6.15남북공동선언>을 준수하고 <남북기본합의서>를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북한의 혼란과 불안정은 한반도의 불안정을 초래하게 됩니다. 남북관계가 파탄되면 안보위기가 조성되고 대외적 입지가 약화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효과로 말미암아 우리의 경제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포용정책(화해협력정책)은 유화정책이 아닙니다. 강자만이 추진할 수 있는 것이 포용정책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포용정책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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