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남북정상회담 개최설…대선의 해 ‘北風’ 또부나

  • 입력 2006년 12월 16일 03시 01분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지 정치권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등 여권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내년 3, 4월 개최 가능성을 거론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청와대는 “현 시점에선 생각하는 게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상황이 변하면…”이라고 여지를 남기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때만 되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휴화산’이라는 얘기다.

남북 정상회담 카드는 내년 대선 정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 특히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높은 평화체제 문제는 여권에 정치적으로 유리한 공간을 열어 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평화체제 이슈로 대선 구도가 재편되고 지리멸렬한 여권의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나라당이 정상회담 카드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경계하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설혹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 정상 간에 어떤 합의가 나온다 해도 그것이 제대로 실행될지, 남북관계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할지는 의문이다. 물러날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자칫 책임질 수도 없는 중대한 합의를 해버릴 경우 차기 대통령에게 부담만 지울 뿐 남북관계 개선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1차 정상회담을 열어 통일의 자주적 해결과 이산가족 상봉 등 5개항에 합의했지만 경협 확대와 이산가족 상봉 등이 일부 실행됐을 뿐 북한의 개혁 개방 등 근본적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이산가족 상봉마저 중단됐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Q: 남북 정상회담은 어떻게, 어디서 추진해 왔나?

A: 4월 제18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인 조명록 차수의 서울 방문을 요청했다. 사실상 정상회담 특사 파견을 요청한 것이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도 지난해 6월 방북했을 때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9월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광복 60주년 8·15민족대축전에 참석하기 위해 내려온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정 전 장관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구체적인 협의를 벌였다고 한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 주체는 통일부를 비롯해 국가정보원 등 공식 채널과 함께 비공식 채널도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공식, 비공식 채널을 동시 가동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술이다. 비공식 채널은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별도의 ‘비선(秘線)’ 채널을 뜻한다.

채널 다각화는 회담 성사를 위한 ‘충성 경쟁’을 이끌어 내는 효과가 있다.

Q: 지금은 추진하고 있나? 한다면 어디서 하나?

A: 정부는 현재 남북 정상회담 추진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추진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북 정보통인 정형근 의원은 “입이 무거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중국에서 북한 측과 접촉하며 정상회담의 의제, 시기 등을 협상 중인 것으로 안다”며 “내년 3, 4월 정상회담 개최가 유력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남북 간 비선 라인이 노무현 대통령의 386 핵심 측근인 A 씨와 김 위원장의 최측근인 강관주 노동당 대외연락부 채널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지난달 김만복 국정원장 체제의 출범으로 공식 라인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원장이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대북전략1과장을 맡아 2000년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 대북전략 수립에 깊숙이 관여한 이력 때문이다.

Q: 노무현 정부가 그동안 취해 온 대북유화책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깔아 놓은 ‘레드 카펫’인가?

A: 다분히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노 대통령은 5월 몽골에서 노골적으로 ‘정상회담 구애’를 했다. 노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언제 어디서 무슨 내용을 얘기해도 좋으니 만나서 얘기해 보자고 수십 번 얘기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후 노 대통령이 “북한은 결코 전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유화적 발언을 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정상회담 성사를 노린 포석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Q: 김 위원장이 임기 말인 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까? 한다면 김 위원장이 원하는 반대급부는?

A: 현재 노 대통령은 물론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지지도 등을 고려할 때 내년 대선에서 집권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김 위원장에게는 선뜻 정상회담에 나서기 어려운 요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북한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고 열린우리당의 재집권을 돕기 위해 정상회담에 응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하지만 2000년 정상회담의 성사 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는 남측이 북측에 줄 ‘선물’에 달려 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1차 정상회담을 위해 현대그룹을 통해 4억5000만 달러 이상의 ‘면담료’를 김 위원장에게 지불했다. 또한 정상회담이 개최됐던 2000년부터 매년 쌀 40만∼50만 t(수송비 포함해 약 1500억 원 상당)과 비료 30만 t(수송비 포함해 약 1200억 원 상당) 이상을 북측으로 보냈다. 이 밖에 2000년 9월 판문점을 거쳐 북으로 송환된 63명의 비전향장기수도 남북 공동선언에 명문화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정상회담에서 합의됐던 내용이라는 후문이다.

Q: 그렇다면 북측은 이번에도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까?

A: 임기 말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해 주는 대가로 1차 회담 때보다 더 많은 반대급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은 2004년 6·15공동선언 기념행사에서 △북한 경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각종 인프라 확충 △산업생산 능력 향상에 협력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협력 확대에 협력 등을 강조했다. 또 노 대통령은 올해 5월 몽골에서 연 동포간담회에서 “(북측에) 많은 양보를 하려고 한다. 제도적, 물질적 지원은 조건 없이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화난에 쪼들리는 북한은 ‘현금+경협 패키지’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결의문(1718호)이 통과된 뒤 북한에 거액의 현금이 흘러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북한이 원하는 현금을 건네려면 뭔가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

Q: 남북 정상회담을 한다면 언제, 어디서 열리나?

A: 김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 시 자신의 신변안전이 100% 보장될 것으로 믿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곳이 금강산과 개성 등 북측 지역과 함께 한반도가 아닌 제3국도 거론된다. 정 전 장관은 12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초청 특강에서 “통일부 장관 시절 (정상회담 장소로) ‘한반도 이외의 지역도 가능하냐’는 북한의 타진이 있어 ‘한반도 이외의 장소도 고려할 수 있다’는 답변을 보낸 바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내년 3, 4월을 넘기면 현실적으로 개최가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라는 커다란 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Q: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무엇을 논의하나?

A: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마무리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던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11일 “북핵과 평화협정 전환 문제, 대북 원조 등이 주된 의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으로서는 2차 정상회담에서 연방제 통일방안을 구체화하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6·15공동선언 2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한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고 규정하고 있다.

Q: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정치적 효과가 있을까, 여권의 기대대로 대선에 유리할까?

A: 노 대통령은 2002년 5월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유감스러운 것은 2000년 4·13총선 직전 남북 정상회담을 발표해 대북정책을 국내 정치에 활용한 것처럼 국민에게 오해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상회담을 연다면 ‘선거용’ 시비가 또 불거질 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내년 대선을 ‘평화세력 대 대결세력’ 구도로 몰아가면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정창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북한 핵실험으로 조성된 남북 대결 국면이 화해와 협력 국면으로 바뀌면서 햇볕정책 폐기를 주장해 온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수세에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권으로서는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경우 현 정부의 국정 실패에 대한 심판론이 묻히고 지리멸렬한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호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함 직하다.

물론 노 대통령의 저조한 지지율과 임기 말 레임덕(권력누수현상)으로 설령 회담이 성사돼도 ‘반짝 특수’에 그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총선 사흘 전에 발표했으나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은 총선에서 96석을 얻는 데 그쳐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지지도도 정상회담 직후 90%에 육박했으나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고 3남 홍걸 씨가 구속되는 등 대통령 친인척 비리 사건으로 그해 10월부터 50%대로 뚝 떨어졌다.

Q: 임기 말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열어 국가 안위와 관련된 중대 결정을 하는 것이 법적인 문제는 없는가? 차기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월권은 아닌가?

A: 헌법에 보장된 임기 내에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법적 문제는 없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견해다. 그러나 외국과 맺는 조약의 경우 국회가 동의권을 행사해 대통령의 조약 체결·비준권을 견제할 수 있는 반면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합의는 조약이 아니어서 국회의 견제가 어렵다. 이 때문에 정책의 연속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물러날 대통령이 책임질 수도 없는 합의를 하거나 대북 양보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례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4년차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으나 2년 뒤인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남북기본합의서는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의 임기 말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해도 민족의 화해와 협력에 실질적인 진전을 이룩하기보다는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이벤트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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