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국무총리가 19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19일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발언에 대해 측근들은 20일 ‘정치적 의미가 큰 발언’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한 총리가 정권 재창출에만 몰두하는 청와대 일부 인사 및 친노(親盧·친 노무현 대통령) 그룹 등 여권에 작심하고 한 발언이라는 얘기다.
한 총리는 전날 국무회의에서 “오늘은 4년 전 당시의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뜻 깊은 날이다. 당시 시대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을 해 왔으나 지금 국민이 참여정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치꾼’이란 표현 직접 선택=측근들에 따르면 한 총리는 당초 이 발언을 국무회의 끝에 국무위원들에게만 비공개로 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심 끝에 모두 발언으로 바꿔 언론에 공개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한 총리는 표현을 다듬기 위해 참모들과 수차례 회의를 거듭했다는 후문이 있다.
특히 ‘정치꾼’이란 표현은 참여정부 출범 당시의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오로지 정권 재창출에만 몰두하는 친노 직계그룹과 통합신당파 등 여권의 분열에 대한 지적으로, 한 총리 자신이 직접 이 단어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조차 노 대통령 당선 4주년 기념일의 의미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 총리가 먼저 나선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 한 총리 주변의 말이다. 한 총리는 평소 “국정에만 전념하겠다”며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 왔다.
▽여권 내 차별화 시동?=한 총리가 청와대와는 별개로 노 대통령 당선 기념일의 의미를 언급한 데는 여권과 진보 진영 내에서 친노 직계그룹과의 차별화를 위한 행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총리의 측근은 “한 총리는 당시 대선 승리가 일부 386 및 정치인들의 전략적 승리가 아닌 변화와 진보를 바랐던 시대정신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며 “청와대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이날의 의미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진보 쪽에 몸담고 있는 한 총리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진보, 민주화 기반 위에 친노 직계 그룹과는 차별화를, 보수 진영에는 ‘대화가 가능한 합리적인 인물’로 이미지를 쌓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그는 북한 미사일 및 핵실험 등 안보 위기 사태가 벌어질 당시 재향군인회, 이북 5도지사, 순직 장병 유가족 간담회, 육군사관학교 등을 방문했고,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을 비공개로 만나는 등 진보진영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안보 행보’를 계속했다.
한 총리의 이 같은 일련의 행보는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명숙 대망론’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선주자들의 윤곽이 드러난 한나라당에 맞설 대항마가 보이지 않을 경우 한 총리가 나설 수도 있다는 게 일부 측근의 얘기다.
하지만 총리실 일각에선 ‘한 총리는 가만히 있는데 측근들이 앞서 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또 다른 한 총리 주변 인사는 “이번 발언 및 안보 행보 등의 뒤에는 한 총리 측근들의 강한 권유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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