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총리, 뭔가 ‘큰 뜻’ 품었나…친노 386등 겨냥 쓴소리

  • 입력 2006년 12월 21일 03시 01분


한명숙 국무총리가 20일 경기 오산시 미 7공군사령부를 방문해 부대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오른쪽은 스티븐 우드 미 7공군사령관. 오산=연합뉴스
한명숙 국무총리가 20일 경기 오산시 미 7공군사령부를 방문해 부대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오른쪽은 스티븐 우드 미 7공군사령관. 오산=연합뉴스
“정치꾼은 항상 다음 선거만을 생각하지만 올바른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현재 정치적 상황에 여러 가지 그림자가 많다.”

한명숙 국무총리가 19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19일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발언에 대해 측근들은 20일 ‘정치적 의미가 큰 발언’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한 총리가 정권 재창출에만 몰두하는 청와대 일부 인사 및 친노(親盧·친 노무현 대통령) 그룹 등 여권에 작심하고 한 발언이라는 얘기다.

한 총리는 전날 국무회의에서 “오늘은 4년 전 당시의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뜻 깊은 날이다. 당시 시대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을 해 왔으나 지금 국민이 참여정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치꾼’이란 표현 직접 선택=측근들에 따르면 한 총리는 당초 이 발언을 국무회의 끝에 국무위원들에게만 비공개로 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심 끝에 모두 발언으로 바꿔 언론에 공개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한 총리는 표현을 다듬기 위해 참모들과 수차례 회의를 거듭했다는 후문이 있다.

특히 ‘정치꾼’이란 표현은 참여정부 출범 당시의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오로지 정권 재창출에만 몰두하는 친노 직계그룹과 통합신당파 등 여권의 분열에 대한 지적으로, 한 총리 자신이 직접 이 단어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조차 노 대통령 당선 4주년 기념일의 의미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 총리가 먼저 나선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 한 총리 주변의 말이다. 한 총리는 평소 “국정에만 전념하겠다”며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 왔다.

▽여권 내 차별화 시동?=한 총리가 청와대와는 별개로 노 대통령 당선 기념일의 의미를 언급한 데는 여권과 진보 진영 내에서 친노 직계그룹과의 차별화를 위한 행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총리의 측근은 “한 총리는 당시 대선 승리가 일부 386 및 정치인들의 전략적 승리가 아닌 변화와 진보를 바랐던 시대정신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며 “청와대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이날의 의미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진보 쪽에 몸담고 있는 한 총리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진보, 민주화 기반 위에 친노 직계 그룹과는 차별화를, 보수 진영에는 ‘대화가 가능한 합리적인 인물’로 이미지를 쌓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그는 북한 미사일 및 핵실험 등 안보 위기 사태가 벌어질 당시 재향군인회, 이북 5도지사, 순직 장병 유가족 간담회, 육군사관학교 등을 방문했고,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을 비공개로 만나는 등 진보진영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안보 행보’를 계속했다.

한 총리의 이 같은 일련의 행보는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명숙 대망론’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선주자들의 윤곽이 드러난 한나라당에 맞설 대항마가 보이지 않을 경우 한 총리가 나설 수도 있다는 게 일부 측근의 얘기다.

하지만 총리실 일각에선 ‘한 총리는 가만히 있는데 측근들이 앞서 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또 다른 한 총리 주변 인사는 “이번 발언 및 안보 행보 등의 뒤에는 한 총리 측근들의 강한 권유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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