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에서 한 ‘격정 발언’에 대해 여야 정치권은 일제히 ‘부적절하고 품위 없는 언행’이라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 “신경 안 쓴다”=민주당 등과의 통합신당을 추진하는 세력에선 “노 대통령과는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정봉주 의원은 22일 “대통령이 말 한마디 할 때마다 국민은 죽음의 고통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우원식 의원은 “대통령의 그런 발언이 반복되다 보니 이젠 충격을 받지도 않는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회는 노 대통령의 발언과 상관없이 당의 진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6일 의원 워크숍을 열기로 했다. 대통령에 신경 쓰지 않고 ‘내 갈길’ 가겠다는 얘기다. 한 비대위원은 “노 대통령이 호남을 축으로 한 통합신당에 반대한다는 것인데, 어차피 대통령과는 갈 길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정쩡한’ 여당 친노(親盧)=친노(친 노무현 대통령) 진영은 노 대통령을 적극 지원해야 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충동적인 것인지, 정치적 검토를 거친 뒤 한 것인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내 친노 그룹인 참여정치실천연대, 의정연구센터, 신진보연대 등은 21일 밤 공동 워크숍을 열었으나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선 특별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형주 의원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인사권자의 소회 정도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당분간 우리는 당을 정상화하는 계기로 만드는 데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갑원 의원도 “견강부회 해석을 할 필요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청와대 ‘언론 탓하며 물타기?’=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스스로 임명했던 고 전 총리를 비난했다는 대목이 부담스러운 듯했다. 청와대는 “전후 맥락이 잘못 전달됐다”며 불끄기에 나섰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고 전 총리의 인품이나 역량, 당시 정책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고 전 총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말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도 “대통령의 발언은 상황과 구조에 대한 언급이었다. 개인에 대한 비판이나 폄훼가 아니었다”고 거들었다.
그 대신 청와대는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우리 사회 보수 진보 간 대화와 통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토로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그런데도 언론은 정치공학적 시각에서 대통령과 특정인, 특정 정치세력을 대립시켰다”고 언론 탓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발언엔 평소 생각이 깔려 있다고 보는 청와대 관계자들도 있다. 특수한 사례를 빗대 고 전 총리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다는 얘기다.
▽야당, ‘대통령 막말 자행(恣行)’=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노 대통령이 또다시 막말을 자행했다”며 “마치 드라마 ‘왕건’에 나오는 궁예의 말로를 보는 듯해 처연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통화에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데 대한 자기반성 대신 대통령을 그만 둔 뒤에도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 아니겠느냐”며 “열린우리당이 도와주지 않으면 자기 나름대로 정치를 하겠다는 대여 협박 발언”이라고 말했다. 유기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대권 새판 짜기의 시동을 본격적으로 걸었다”며 정치적 노림수를 경계했다.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송금이 통치행위라는 논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을 문제 삼으며 “대북송금사건 특검은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수용한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론 대부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제로 밀어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의 정호진 부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 정계개편과 관련해 주도권을 발휘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