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관 “뉴욕선 회담 안해” 여전히 배짱

  • 입력 2006년 12월 25일 03시 00분


《23일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만난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느긋한 표정이었다. 그는 18일부터 22일까지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제5차 2단계 6자회담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풀지는 못했지만 ‘금융제재 해제 전엔 핵 동결 논의를 못 한다’며 미국을 강하게 밀어붙인 데 만족하는 것 같았다. 지난해 11월 제5차 1단계 6자회담 후 서우두 공항에서 잠깐 만났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자신감마저 느껴졌다. 》

그는 당시 기자들의 질문에 거의 답변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본보 기자를 제지하는 수행원들을 비켜서게 한 뒤 질문에 자세히 답했다.

▽6자회담 진전 난망=김 부상은 이번 6자회담에 대한 평가와 차기 6자회담 재개 전망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뭐 항상 낙관적”이라며 “(미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결단을 해 금융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제재 문제와 비핵화를 논의하는 6자회담을 하나로 묶어 정치적인 해법을 찾지 않으면 차기 6자회담 재개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뒤 외교적 성과를 올리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점을 간파한 대미 압박이다.

그러나 미국이 ‘핵 동결 보장’도 아닌 ‘핵 동결 논의’를 위해 금융제재를 풀 가능성은 극히 낮다. 금융제재를 법 집행 문제로 규정해 비핵화 협상과 분리하려는 미국의 정책 기조와 정면 배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 동결 논의의 선결 조건=금융제재 해제’라는 고집을 꺾지 않을 경우 6자회담의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회담이 또다시 장기 공전될 수 있다.

또 김 부상은 인터뷰에서 미국이 금융제재 해제를 핵 동결에 대한 상응조치로 생각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며 “미국이 너무 욕심이 많다”고 말했다.

이는 핵 동결과 금융제재 해제를 맞바꾸기 위한 언론 플레이일 가능성이 높다. 말로는 핵 동결에 대한 상응조치로 경수로 제공을 촉구하면서 실제 목표는 그보다 수위가 낮은 금융제재 해제에 맞춰 놓고 있을지 모른다.

▽대미 협상 우위 과시=북-미 워킹그룹이 19, 20일 베이징에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묶인 북한 계좌 문제를 논의한 배경에 대해 김 부상은 “우리가 ‘금융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하지 않으면 6자회담을 안하겠다’고 하니까 (6자회담 미 대표단이) 억지로 (재무 전문가) 몇 명을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미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급하게 워킹그룹을 구성했고 그러다 보니 논의가 형식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듯했다.

이어 그는 워킹그룹이 논의한 내용에 대해 “미국이 애국법 311조 얘기를 하면서 금융제재는 법적인 문제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만 강조했다”고 밝혔다.

애국법 311조는 미 재무부가 BDA은행을 ‘주요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한 근거가 되는 법 조항이다.

김 부상은 이번 워킹그룹의 논의가 생산성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다시 워킹그룹을 열어 논의하는 데 대해선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이 뉴욕에서 차기 워킹그룹을 열려고 하는 데 대해 “뉴욕에 갈 생각은 없다”며 베이징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워킹그룹 장소로 평양도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베이징=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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