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상은 이날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본보 기자를 만나 “미국은 너무 많은 욕심을 내 금융제재 해제 하나로 단번에 핵 동결을 얻으려고 하는데 그건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금까지 미국 측에 대북 금융제재를 해제하면 평북 영변의 5MW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고 그에 대한 사찰을 받겠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김 부상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금융제재 해제가 핵 동결 논의에 착수하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8∼22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펴 미국이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부상은 원자로 가동 중단 등 핵 동결의 대가로 경수로 건설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원자로는 경제적인 목적과 군사적인 목적 두 가지로 쓰이기 때문에 원자로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면 경제적 상응조치로 경수로가 제공돼야 한다”며 “경수로 건설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건설 기간 중 대체 에너지가 지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 동결→신고→검증→폐기’의 순으로 이어지는 핵 문제 해법 과정에서 첫 단계인 핵 동결에 대한 상응조치로 경수로 건설 및 에너지 지원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핵실험 시설 폐쇄 등 핵 폐기와 직접 연관된 조치가 이뤄지는 막바지 단계가 돼야 에너지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또 그는 19, 20일 베이징에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묶인 북한 계좌 문제를 논의한 북-미 워킹그룹에 대해 “형식적인 만남이었다. 미국은 우리가 (BDA은행을 통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부상은 미국이 내년 1월 뉴욕에서 2차 BDA은행 문제 워킹그룹을 열려는 데 대해 “우리는 뉴욕에 갈 생각이 없다.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차기 6자회담 일정에 대해 “금융제재 해제 문제가 잘 풀려야 한다”며 내년 워킹그룹 논의 결과와 6자회담 재개 문제를 연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북한이 김 부상의 발언과 같은 협상 전략을 고수할 경우 6자회담이 다시 열리더라도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 일각에서 일고 있는 ‘6자회담 무용론’이 확산되고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제적 여론이 일 소지가 있다.
베이징=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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