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백남순 외무상은 누구

  • 입력 2007년 1월 3일 18시 55분


2일 사망한 백남순 외무상은 외교관료라기 보다는 남북관계에 더 정통한 '대남통'이다.

1929년 량강도 출신인 백 외무상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마치고 대외문화연락협회 부위원장과 1974년 폴란드 주재 대사를 역임했지만 기본적으로 백남준이라는 가명으로 남북회담에서 더 낯익은 인물.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으로 활동을 했고 1984년에는 북한 적십자사의 수해구호물자 인도대표로 남측을 방문했으며 1990년 9월부터 남북고위급회담에 정무원 참사실장 자격으로 빠짐없이 참가했다.

특히 1991년 서울에서 열린 고위급회담에 참가할 때는 판문점을 거쳐 자유로를 통해 서울로 이동하던 중 취재경쟁 속에서 백 외무상이 탄 버스가 취재차량과 접촉사고를 일으키면서 급정거, 다리와 목을 다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이후 1994년에도 김영삼 대통령 시절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부총리급 예비접촉에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한 고위급 탈북자는 "백 외무상이 대남업무를 담당할 때는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독대를 하면서 자기 의견을 직접 개진할 정도로 실세로 통했다"고 말했다.

외무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우리의 국회의원격인 최고인민회의10기 대의원에 선출되면서부터.

외교파트에서 주로 얼굴마담 역할을 맡아온 백 외무상은 각국의 북한 주재 대사의 신임장을 접수하거나 북한을 방문하는 고위 대표단을 만나 환담하는 업무를 주로해왔으며 그의 마지막 공개업무는 류샤오밍북한주재 중국대사와 면담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대표단을 파견하면서 백 외무상은 장관급 단장 자격으로 꾸준히 참가해 왔으며 이 포럼에서 미국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더불어 주요 참가자로 활동했다.

북한의 백남순 외무상은 작년 7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컨벤션센터(KLCC)에서열린 ARF 리트리트(편하게 토론하는 회의)에 참석해서는 라이스 국무장관을 앞에 두고 "제재 모자를 쓰고는 6자회담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는 등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백 외무상은 지병인 신장병으로 고생을 해 왔으며 ARF에 참석해서도 현지에서 투석 등의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위급회담에 참가했던 한 관계자는 "백 외무상은 진중한 성격의 소유자로 말도 많지 않았고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상당히 신중한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백 외무상은 비교적 자기과시적인 발언을 많이 해서 눈길을 끌었다"며 "퉁퉁한 외모 만큼이나 진지하게 발언을 했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3남 1녀를 둔 것으로 알려진 백 외무상의 막내 아들인 백룡천씨는 작년 6월 남한의 광주에서 열린 6.15민족통일대축전에 내각사무국 부장 자격으로 참가하기도 해 아버지에 이어 대남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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