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북한 몇시인가]<4>제2 고난의 행군 오나

  • 입력 2007년 1월 4일 03시 00분


북한은 지난해 핵실험 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경제난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국내외전문가들이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16일 북한 신의주 압록강변에서 북한 군인들이 식량을 운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북한은 지난해 핵실험 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경제난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국내외전문가들이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16일 북한 신의주 압록강변에서 북한 군인들이 식량을 운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핵실험 이후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인도적 지원 감소로 어느 해보다 추운 ‘핵겨울’을 맞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특히 북한의 연간 식량 소요량은 650만 t인 데 비해 지난해 7월 150만 명의 이재민을 낸 수해로 식량 생산량이 300만 t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300만 명의 아사자(餓死者)를 낸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2007년 북한을 전망하는 경제 분야 설문에 답한 국내외 경제전문가 9명(국내 6명, 해외 3명) 중 7명은 대북제재에 따른 경제 악화가 ‘고난의 행군’ 수준의 심각한 경제위기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절반 이상(6명)의 전문가가 북한 핵실험 이후 진행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대답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과 중국 지원으로 대북제재 효과 없어=대북제재가 북한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 전문가 6명 중 4명은 그 원인으로 ‘한국과 중국의 지원’을 꼽았다. 북한 대외교역 규모의 65%를 차지하는 한국과 중국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는 것.

특히 전문가들은 북한 경제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의 대북제재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응답자 8명 가운데 5명이 중국이 ‘현재도 북한 체제에 큰 영향을 주는 경제적 압박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것.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한 직후 중국 단둥(丹東)지역의 일부 은행이 북한 관련 송금 업무를 자체적으로 중단한 데 이어 국경 경비 강화, 원유 공급 감축 등 적극적인 행보를 중국이 보였음에도 북한 체제에 근본적인 타격을 주는 경제제재를 강행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나머지 전문가들 역시 중국이 현 수준의 대북제재를 유지할 것(2명)이라는 응답과 대북제재를 점차 완화할 것(1명)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중국이 대북제재를 강화할 것이라는 보는 전문가는 없었다.

이는 대다수 전문가가 북한의 체제 불안을 위협으로 여기는 중국의 소극적인 자세 때문에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대북제재가 앞으로도 북한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영훈 한국은행 동북아경제연구실 과장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지난해 10월 북-중 무역 품목별 거래 내용에 변화가 거의 없었으며 중국이 취하던 대북제재 역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발표 이후 거의 해제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같은 중국의 태도는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래리 닉시 미 의회조사국 선임연구원은 “최근 북한의 고위층들이 단둥에서 쇼핑하는 장면이 목격된 것이 좋은 사례”라며 “한국과 중국의 계속적인 재정 지원이 북한 정권을 유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 북한발 ‘핵폭탄’ 맞을까=경제 악화로 인한 북한의 급변사태가 남측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한국과 해외 전문가의 의견이 갈렸다.

응답한 국내 전문가 5명 중 4명이 북한의 급변사태가 한국 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 반면, 해외 전문가들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따른 경제 혼란이 ‘회복 가능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전문가들은 북한의 급변사태로 인한 혼란이 예금 인출과 자본의 해외 유출 등 금융시장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대한(對韓) 투자 리스크가 높아지고 원화의 평가절하가 예상됨에 따라 일시적으로 외국인투자가들이 자금을 대거 회수하는 등 제2의 외환위기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해외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신중한 답변을 내놨다. 닉시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급변사태가 군사적 충돌로 이어진다면 한국 경제는 치명적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지만 전쟁을 동반하지 않은 급변사태는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급변사태로 남측에 경제적 혼란이 발생할 경우 초기 대응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유엔 제재는 빠져나갈 구멍 있어 BDA동결이 北경제에 더 큰 영향”美 국제경제연구소 놀랜드 선임연구원▼

“미국의 금융제재는 북한 경제에 연쇄 파급 효과(cascading effect)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유엔 차원의 공식 제재보다 마카오 금융제재가 북한 경제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마커스 놀랜드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원은 금융제재가 계속될 경우 올해 북한 경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유엔의 공식 제재보다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계좌 동결 조치에 더 적의에 찬 반응을 보인다. 유엔 제재는 온건하고 빠져나갈 방법이 있지만 BDA은행 조치는 북한의 대외 경제 거래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북한의 불법 활동에 연루되기를 꺼리는 각국의 다른 금융기관들도 북한과의 거래를 끊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북한은 국제 금융 거래에서 점점 많은 어려움을 맞고 있다. 이는 암시장 내 북한 화폐의 평가절하에서도 드러난다.”

―북한에 1990년대의 대기근 같은 경제적 재앙이 다시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북한 정부는 지난해 쌀의 개인 거래를 금지하고 배급시스템을 부활하려 했으며 농부들에게서 곡물을 압수했다. 그 같은 분별없는 조치로 인해 특히 평양 외곽의 지방도시와 북한 동북부에서 심각한 식량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게다가 이는 경제 제재가 본격화되기 전의 일이어서 그 뒤 상황은 더 악화됐을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와 같은 기근이 재발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북한에 인도주의적 차원의 재난이 생길 경우 국제사회, 특히 한국이 더 신속하게 대응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가 붕괴하면 한국 경제에는 어떤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는가.

“북한 체제 및 경제의 붕괴가 독일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경로로 발생하면 한국 경제에 타격이 되겠지만 이는 극복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은 경제성장이 늦어질 것이며(한반도 전체로는 빨라지겠지만), 소득이 노동자 그룹에서 자본가 그룹으로, 노동자 그룹 내부에선 저숙련 노동자에서 고숙련 노동자로 소득이 몰리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정부가 보상해 주지 않을 경우 소득과 부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북한 핵 문제가 협상을 통해 해결될 경우 북한 경제가 개혁 개방의 경로를 밟을까.

“경제적 측면에서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보다는 루마니아나 벨로루시가 개혁을 시작했을 때와 유사점이 많아 보인다. 중국과 베트남이 개혁을 시작했을 당시엔 70% 이상의 노동력이 농업 부문이었는데 북한은 그 반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북한이 개혁을 할 경우 중국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국제 교역과 투자를 통한 외국인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북한 지도부가 그 같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외국의 영향력 증대를 자신의 권력 유지에 큰 위협으로 여기지 않을지가 의문이다.

지난 수년간의 경험에 따르면 이 대목을 낙관하기 어렵다. 수확이 나아진다고 생각되는 순간 북한 지도부는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 과거의 정책으로 돌아가 버렸다. 한국의 원조와 지원이 북한의 개혁을 촉진하는 게 아니라 반대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북한으로 하여금 임시변통의 조치를 계속하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놀랜드 선임연구원은▼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북한 경제 전문가. 스워스모어대 졸업, 존스홉킨스대 박사.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선임위원을 지내고 존스홉킨스대, 도쿄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서 미국 무역정책과 아시아 금융위기 문제를 연구 및 강의했다. 1985년부터 국제경제연구소에서 근무. ‘김정일 이후의 한국’(2004년) 등 여러 권의 한국 및 북한 경제 관련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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