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북한 소년병과 이라크 교수대

  • 입력 2007년 1월 4일 03시 00분


벌써 작년이 되고 말았지만 며칠 전에 본 두 가지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쇼크였기 때문이다.

첫째 충격은 12월 27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간 북한 군인의 모습이었다. 명색이 병사인 북한 주민의 키가 옆에 선 한국군 장교의 어깨 높이에 가까스로 닿을 정도가 아닌가. 10대 후반으로 알려진 병사의 얼굴엔 어린 티가 가득했다. 내전 중인 아프리카 몇몇 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소년병이 우리 눈앞, 북녘 땅에도 있었던 것이다.

북한과 이라크는 닮은꼴

탈북자 출신인 후배 기자에게 물어보니 놀라운 얘기가 줄줄 나온다. 북한에선 만 16세부터 군대에 간다. 키가 145cm만 넘으면 입대할 수 있기 때문에 남한의 초등학생 정도 신장의 군인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1990년대 중반 혹독한 기아를 거치며 특히 피해가 심해 당시 한창 성장기였던 1980년대 출생자들부터 ‘난쟁이 수준’의 주민이 많아졌다.

무동력 목선을 타고 표류하다 한국군에게 구조돼 10여 일간 치료를 받은 북한 소년병은 만세삼창을 외치며 북한 땅으로 넘어갔다. 무엇이 그리 좋을까. 남한 땅에 태어났더라면 훤칠한 모습으로 학업에 열중하고 있을 텐데….

12월 30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교수형 장면은 자연인 한 사람의 죽음을 뛰어넘는 충격이었다. 전쟁에 진 독재자와 함께 이라크 국민 전체가 교수대에 올라섰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국인들은 미군 전사자가 3000명을 넘었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이라크에서는 2003년 3월 미군 침공 이후 적게 잡아도 5만 명의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9월과 10월을 비롯해 한 달에 3000명 이상 숨진 사실이 확인된 경우가 있으니 터무니없는 수치는 아니다. 70만 명이 죽었다고 주장하는 단체도 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이라크인끼리 죽고 죽이는 처절한 살육전의 희생자들이다. 후세인이 처형당한 날에도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해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후세인의 죽음은 이라크가 쓰고 있는 비극(悲劇) 속의 한 개 에피소드일 뿐이다.

두 장면의 잔상(殘像)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이라크와 북한의 동질성 때문이다. 북한도 이라크가 가는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두 나라를 오늘의 불행에 빠뜨린 지도자들부터 닮은꼴이 아닌가.

세습 독재자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피치자의 지지를 권력의 근거로 포장해 내세운다. 북한은 2003년 8월 5일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이 99.9%, 찬성률은 100%였다고 발표했다. 김 위원장도 649호 선거구에 출마해 100% 찬성으로 당선됐다. 후세인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10월 15일 치러진 7년 임기의 대통령 선거에서 100% 투표, 100% 지지로 당선됐다.

단 한 사람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가련한 국민을, 후세인은 살육전의 대상이 되게 했고, 김 위원장은 못 먹어서 성인이 돼도 초등학생 정도의 체구밖에 안 되게 만들었다.

북녘 동포 구하기 시급하다

백보를 양보해 이라크의 비극은 먼 나라 일이라며 모른 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불행은 외면할 수 없지 않은가.

정초니까 꿈을 가져 본다. 대북 정책이 북한 지도자 체면 살려주기에서 북한 주민 구하기로 변했으면 한다. 왜소한 북한군 병사가 모든 것을 말해 주는데도 ‘승리와 번영의 기상이 약동하고 있다’(신년 공동사설)고 우기는 북한 정권의 비위를 맞추려고 누군가가 궤변을 쏟아낸다면 돌팔매가 날아갔으면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 이라크처럼 북한 지도자는 물론 수많은 국민까지 죽는 최악의 날이 올까 두렵다.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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