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6·25전쟁이 남침이냐’는 질문에 “이 자리에서 규정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변해 친북 편향적인 시각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취임 후 북한을 거드는 듯한 그의 행보엔 거침이 없다.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나서고,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됐지만 이 장관은 자신의 소신대로 대북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갈수록 분명히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북한 핵과 인권문제 등 잘못엔 눈을 감은 채 일방적으로 북한을 감싸고 대북 지원 재개 등에만 관심을 나타내는 이 장관을 비판하며 해임건의안 제출까지 검토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관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대북 쌀 지원의 무상 전환 등 민감한 이슈를 계속 제기하고 있다. 그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 같은 ‘밀어붙이기’를 고집하는 것일까.
통일부 주변에선 그의 행보가 재야에서 통일운동을 하던 시절의 소신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책 추진을 위한 현실적인 여건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익은 구상을 불쑥불쑥 쏟아내는 데 대해선 불안한 시선이 적지 않다.
정부 당국자들조차 “장관의 개인적 소신이 워낙 강해 설득이 어렵다”며 “구상 단계가 아닌 정책화 단계에서 발언을 해야 하는데 말이 앞선다”고 지적한다.
이 장관이 8일 연합뉴스와의 회견에서 현재 연이율 1%의 차관 형태로 제공하고 있는 대북 쌀 지원을 인도적 방식의 무상 지원으로 바꿀 수 있음을 시사한 것도 그런 경우다. 이 장관은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으로 인해 대북 지원이 끊긴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같은 지원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 장관이 긴급구호처럼 쌀 지원도 조건 없이 줄 수 있는 인도적 지원이었다면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쌀 지원을 끊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장관이 8일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틀 자체가 6자회담에 종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가동을 위한 남북 정상회담 추진 구상을 구체화하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특사 파견이 필요하며 2차 남북 정상회담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결국 이 장관은 인도적 대북 지원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축을 시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의 이 같은 구상이 올해 말 대선을 염두에 둔 ‘판 흔들기’ 시도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남북관계에서의 획기적 변화를 통해 한나라당을 ‘수구보수’ ‘전쟁세력’이라고 공격하는 열린우리당을 지원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론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학자는 “대북정책 추진에 있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핵문제 해결 우선이라는 원칙과 초당적인 합의에 입각해 순리대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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