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내려다보며 우유목욕…" 북한 상류층의 삶

  • 입력 2007년 1월 12일 16시 39분


북한 평양역앞에 설치된 평화자동차의 승용차 ‘휘파람’ 광고. 연합
북한 평양역앞에 설치된 평화자동차의 승용차 ‘휘파람’ 광고. 연합
집에서 인터넷 하는 북한 가정. 연합
집에서 인터넷 하는 북한 가정. 연합
핵실험 전 촬영한 압록강 변의 벤츠중국의 한 소식통이 지난해 10월 초 압록강 너머 북한 신의주 쪽 사진을 찍다가 포착한 벤츠 승용차. 신의주에선 흔히 눈에 띄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9일) 이후 벤츠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핵실험 전 촬영한 압록강 변의 벤츠
중국의 한 소식통이 지난해 10월 초 압록강 너머 북한 신의주 쪽 사진을 찍다가 포착한 벤츠 승용차. 신의주에선 흔히 눈에 띄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9일) 이후 벤츠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지난해 10월 9일 핵실험을 감행한 직후 국제사회는 전례 없이 강한 대북제재에 나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지도층을 겨냥한 사치품 금수조치가 내려졌고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에 제공하던 식량 및 생필품도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서 대북제재는 북한 지도층과 주민들 모두의 삶에 깊고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2007년 새로운 제재 국면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가. 본보는 북한의 핵 실험 이후 다양한 계층의 북한 주민과 접촉해 극소수 상류층과 일반 주민들의 삶을 취재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 공평한 분배가 지상 과제였던 북녘 땅이 이제 빈부격차로 신음한다. 대다수 주민들이 하루 벌어 고단한 삶을 사는 동안 특권층들은 권력을 이용해 돈을 기하급수적으로 불려 왔다.

2007년 북한은 국제사회의 엄혹한 제재 속에 살아가는 나라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으로 가는 생명 줄을 끊지 않는 한 중국과의 무역을 독점한 특권층의 재산 증식은 지속될 전망이다.

폐쇄사회의 빈틈을 노려 부를 축적해 가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상징되는 세계의 흐름을 일정 부분 북한에 접목시키는 선구자적 역할도 한다.

▽특권은 돈=북한 형제산무역회사(가칭) 사장 김순정(가명·38) 씨. 그는 수 만 달러를 굴리면서 중국과 양곡 무역을 한다. 김 씨에게는 북한에서 '와크(러시아 말로 대외교역위원회를 뜻하는 바트에서 나온 것으로 보임)'라고 불리는 해외무역거래허가증이 있다. 중앙당, 무역성, 국가보위부, 사회보안부(경찰청)를 비롯한 7개 국가기관 도장을 받아내 와크를 손에 쥐는 일은 북한에서도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외할아버지가 빨치산 시절 김일성 주석의 경호원을 했던 항일투사인데다 삼촌이 노동당 중앙당 부부장인 덕에 김 씨는 와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해외에 연줄은 있으나 무역허가증이 없어 목말라하는 다른 무역업자에게 와크를 빌려주기만 해도 거래금액의 5%를 받는다.

이런 김 씨는 두려운 것이 없다. 그의 집안 배경을 알면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가문의 외화벌이 '대표선수'인 김 씨는 번 돈의 상당수를 집안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회사도 그가 직접 만들었고 직원 8명도 그가 면접을 보고 뽑았다.

중국과의 무역은 한 차례 거래에서 수송비와 보관비를 다 빼고도 투자금액의 5% 이상 이윤을 본다. 한달에 3차례, 1년에 약 30차례 정도 돈이 돌고 돈다. 남은 돈을 재투자하면 1년에 본전의 6배 이상 불어난다.

김 씨와 거래하는 중국인 상인 천 모씨는 "북한만큼 돈이 돈을 낳는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 씨가 해외에 다니고 싶어 하지만 집안에서 과오를 범할 수 있다며 못 나가게 해 속상해한다고 귀띔했다.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 북한 일각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현상이다.

▽자가용 모는 아가씨=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2월 중국 단둥(丹東)발 르포기사에서 고액쇼핑을 즐기는 북한 특권층의 생활을 조명했다.

김일성 배지를 단 북한인들은 단둥에서 5만 달러짜리 고급 세단을 사는가 하면 심지어 별장을 구입하고 압록강을 내려다보며 우유목욕까지 즐긴다고 신문은 전했다.

북한 내에서도 부자들의 과소비는 눈에 띈다. 평양 외화상점 앞에서는 색안경을 쓰고 승용차를 몰고 온 아가씨들이 자주 눈에 띈다. 몇 년 전부터 비공식적으로 자가용 소유가 허락된 이후 생긴 일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에선 일본 출신 '귀국동포'에게만 자가용이 허락돼왔다.

그러나 이제는 돈을 합법적으로 벌었다는 것만 증명하면 차를 구입하든 호텔에서 연회를 즐기든 국가가 간섭을 하지 않는다. 기관·기업소의 경영자율권과 독립채산제를 강화한 2001년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두드러진 변화다. 7·1조치는 자금난에 허덕이는 국가기업에 돈을 투자하고 경영권을 쥐는 '개인사업가'들을 양산시켰다.

부자들이 애용하는 외국산 사치품은 대북제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일본 입출항을 금지당한 북한 화물선들은 최근 동남아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이곳에서는 미국, 일본산 호화물품을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다. 대북제재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부동산에 눈뜬 부자들=모든 자산이 국가 소유인 북한에서 최근 부동산업이 활황이다. 기업들이 낙후한 단층 주택을 사서 그 자리에 고급 아파트를 지어 팔기 때문. 평양, 신의주에서는 보통 50㎡(약 15 평)정도의 고급아파트가 1만 달러, 120㎡ (약 35 평)정도는 2만 달러를 호가한다. 기타 도시의 경우 약 절반 가격이다.

이런 아파트는 거래가 사실상 합법화됐을 뿐 아니라 전기도 아파트를 지은 기업소가 특별 공급한다. 늘 정전돼 있는 일반 주민 거주지와는 달리 부자 아파트는 전기불이 훤해 극명한 빈부의 명암을 드러낸다.

지난해부터는 대도시에서 직접 주택들을 사들여 단독주택을 짓는 부자들도 늘어났다. 입지가 좋은 땅을 많이 차지하면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다는 계산에서다.

호화주택 입주자 중에는 현직 당 간부도 많다. 합법적인 돈임을 증명할 구실은 있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위아래가 다 같은데 나만 처벌받을까"라는 이들의 배짱이 결국 큰 돈을 남기는 '올바른 판단'으로 증명돼왔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장사하는 한 중국 상인은 최근 주택용 태양열전지를 북한에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평균 2500달러의 고가이지만나 이를 살 부자는 충분히 많다는 경제적인 판단이다.

요즘 북한 부자들에게는 가정부도 필수다. 주위엔 '먼 친척'이라고 소문낸다. 컴퓨터를 구입하는 가정도 늘었다. 사실 큰 필요는 없지만 컴퓨터는 있어야 '좀 사는 집'이라는 말을 듣는다. 200달러 정도에 구입해 300달러의 가입비를 내면 국내 인트라넷에 접속해 북한 영화도 볼 수 있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