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장사만이 살길'이라 생각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왔지만 국가의 각종 통제, 특히 각종 명목의 잡세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많은 간부들은 가렴주구(苛斂誅求·세금을 무리하게 걷고 재물을 빼앗음)를 서슴지 않는 탐관오리로 변했다. 주민들을 착취해야 부를 얻고 자신들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뜯고 뜯기는 이러한 악순환은 외부의 식량지원이 중단된 2007년엔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은 급격히 사그라지는 추세다.
▽잡세만 없다면=주민들이 매월 내는 잡세는 보통 30가지 이상이 된다. 주로 '지원품'이란 명목으로 걷는 잡세는 그 종류와 명목이 실로 다양하다.
군인, 영예군인, 노병(지원), 철도, 도로, 염전, 발전소(건설), 양어장, 염소우리, 대학 또는 병원 건설, 3대혁명소조판정, 비료, 수해지역 지원, 담장 도색 및 수리비, 경비비용, 청소 벌금, 충성의 자금을 위한 개가죽, 토끼가죽, 폐철, 폐지 헌납….
지원 형식은 대개 현물을 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집집마다 그 많은 종류의 현물이 있을 리는 없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보통 돈으로 대신한다. 염소우리 마대지원처럼 100~200원으로 해결되는 지원도 있지만 비료처럼 1만 원을 내야 하는 지원도 있다. 아파트에 살아도 어김없이 퇴비 2톤을 내라고 한다. 꺼풀을 벗기면 돈을 내라는 뜻이다.
때문에 인민반장이 지원품을 걷기 위해 오면 주민들은 "이번엔 얼마짜리냐"고 묻는다. 주민들에게서 뜯은 돈은 몇 단계를 거치면서 거의 모두 '증발'된다.
함경남도 단천 시에서는 염소젖을 공급할 농장을 짓는다면서 4년 째 돈을 걷어 왔지만 주민들은 염소젖은커녕 아직 염소 구경도 못했다.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도 좋은 일하기 운동, 군대지원, 학교꾸리기, 겨울나기 같은 각종 명목으로 각종 노역 부담을 져야 한다. 이 때문에 가난한 집 학생들은 아예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빈번하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은 "무료교육이라고 말만 요란하지 월사금(수업료)을 받던 일제시절이 훨씬 편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더하고 나눌 줄만 알면 간부=국가 지도층이 권력을 이용해 대외에서 달러를 벌어들여 돈벌이에 나선 동안 중급 간부들은 온갖 명목으로 주민들을 뜯어내 살아간다. 최근에는 간부들에 대한 배급도 없어 통제를 멈추면 자신들이 굶게 된다. 간부들이 각종 불필요한 일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 북한에서는 간부는 더하고 나눌 줄만 알면 된다는 말이 유행한다. 실례로 한 간부가 "기념비를 새로 짓자"라고 제안하면 그 자리에서 머릿수에 맞춰 개인별 할당량이 정해진다. 한 사람당 돌 5개, 시멘트 2㎏, 각목 2장…, 돌을 돈으로 대신 내면 운송비 포함해서 100원 하는 식이다.
물론 실제 필요한 수량보다 터무니없이 부풀린 것이다. 돈을 안내면 모든 자재를 직접 건설장까지 옮겨놓아야 하거나 몸으로 때워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제대로 일이 진행될 수는 없다.
함경북도 청진화력발전소 앞에는 5헥타르 규모의 농지를 깊이 2m로 파놓고는 몇 년째 방치해왔다. 발전소 폐수를 이용한 양어장을 짓는다고 파놓았지만 사실상 폐수에서는 고기가 자랄 수 없다. 다시 메워도 농사는 불가능하다.
검찰, 국가안전보위부 간부처럼 핵심권력층에 속하는 간부들은 직접 장사를 하기도 한다. 사람을 사서 심부름만 시킨 뒤 모든 문제는 자기가 해결사로 나서 방패막이를 해주는 식이다.
큰 권력이 없는 간부는 자기 관할 사항을 단속한다. 북한에는 녹화기 단속을 전문으로 하는 109호 상무, 무직건달을 단속하는 512호 상무처럼 각종 숫자가 붙은 단속반부터 전기검열대, 전기감독대, 석탄검열대, 방송단속반, 자전거 단속반, 시장단속반 등 각종 단속대가 난무한다. 물론 단속에 걸리면 뇌물을 내야 한다. 예를 들면, 전기단속반은 아무 집에나 들어가 전기 검열한다고 트집을 잡다가 뇌물을 주면 '고맙다'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인사하고 나온다.
윗 기관이 아랫기관을 뜯는 일도 끊이지 않는다. 청진시는 지난해 12월 암흑의 도시가 됐다. 중앙 배전부에서 도 검열을 나왔는데, 흠을 잡히기 싫은 도 배전부가 시내를 모두 정전시켜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원(경찰)에게 인분도 판다=이런 속에서도 주민들은 억척스럽게 장사에 매달린다. 장사 중단은 곧 죽음이니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한다.
지난해 11월 함경북도에서는 도 보안국의 한 간부가 '인민들의 비료생산에 동참하기 위해 다음날 인분 한 양동이씩 들고 출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음날 어떻게 알았는지 보안국 정문 앞에는 인분을 담은 양동이를 놓고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보안원들도 상관에게 질책을 듣기는 싫은지라 인분을 사들고 들어갔다.
북한에서 직장에 출근하면 평균 쌀 3㎏ 가격에 해당하는 3000원의 월급을 받는다. 이 때문에 장사를 하지 않고 월급만 받아서는 절대로 살 수 없다. 북한 노동자의 절반 정도는 보통 공장에 월 1만 원 정도의 돈을 내고 출근부에 도장만 찍고 바로 개인적인 돈벌이에 나선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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